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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연구진 '동기화 원리' 새롭게 주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54면

서로 다르게 깜박이던 여러 마리의 반딧불이가 어느 순간 똑같이 깜박이고, 방을 같이 쓰는 여성들의 생리 주기가 같아지는 현상을 과학자들은 무리들이 활동 주기를 같게 맞추려는 속성 때문으로 해석한다. 활동 주기의 동기화(同期化)다.

과학자들이 뇌 속에 있는 것으로 밝혀진 생체시계의 비밀을 최근 이런 동기화 현상으로 설명하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생체시계는 사람을 포함한 동물이 하루 주기로 활동.휴식을 하도록 생리활동을 조절하는 뇌의 일부로 크기는 콩알만 하다. 생체시계가 고장나면 시차 적응을 못하고 우울증에 걸리는 등 정상적으로 생활하기 어렵다.

생체시계가 존재하는 곳은 눈으로 들어오는 신호를 뇌가 받는 곳인 시상하부 내 시교차상핵이라는 사실은 알아냈으나 아직 작동원리 등이 명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다.

생체시계의 동기화 현상에 대한 연구는 의대 교수들 뿐아니라 물리학자들까지 나서고 있다. 미 코넬대 응용물리학과 스티븐 스트로게츠 교수를 비롯해 미 럿거스대 화학과 신브로트 교수, 하버드 의대 에머리 브라운 교수 등이 대표적이다.

생체시계 역할을 하는 시교차상핵의 세포수는 8천~1만개. 이들 세포를 낱개로 떼어내 재보면 세포마다 하루를 22~32시간의 범위에서 서로 다르게 산다. 그러나 이들 세포를 함께 뭉쳐 놓으면 하루가 24시간 주기로 변한다.

어느 순간 주기가 같아진 것이다. 이런 현상을 과학자들은 세포간에 서로 신호를 보내 주기를 맞추려고 한다고 분석한다.

표준 주기를 만드는 역할은 생체시계가 한다. 방송국이 표준 시간을 알려주듯 몸 전체 세포에 표준 주기를 보내주는 셈이다.

물리학자들은 서로 다른 주기의 세포라 하더라도 세포들간의 연결 강도가 일정 값 이상이 되면 서로 같은 주기와 위상으로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증명했다.

동기화 현상은 자연의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같은 벽에 서너개의 추시계를 달아 놓고 각각 다르게 추를 흔들어 놓더라도 한시간도 안돼 모두 똑같이 움직이게 된다. 연주회에서 청중들이 보내는 기립박수가 어느 순간 똑같아지는 것도 동기화 현상이다.

고려대 물리학과 정재승(뇌과학 전공) 연구교수는 "생체시계의 동기화 현상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메커니즘을 밝히면 수명 연장에도 크게 기여할 것" 이라고 말했다.

현재 과학자들은 신경 세포가 어떤 특정한 신경전달 물질을 매개로 해 그같은 신호를 주고 받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생체시계가 동물의 수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1999년에 이미 밝혀졌다. 캐나다 토론토대 연구팀이 늙은 햄스터의 생체시계를 떼어내고 어린 햄스터의 것을 이식한 결과 수명이 평균 4개월 늘어났다.

생체시계의 주기는 햇빛이 거의 없는 깊은 동굴 속에서는 24.5~25시간으로 늘어나고, 48시간을 하루로 사는 사람도 있다.

시력이 전혀 없는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실험해도 비슷한 주기로 생활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생체시계는 낮.밤 등 태양 주기와 상관없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한 때 만병통치약으로 인기를 끈 멜라토닌제제도 생체시계와 깊은 관계가 있다. 눈이 햇빛을 보면 뇌에서 멜라토닌 생산량이 줄어들고, 잠을 자면 많아진다. 멜라토닌이 낮과 밤을 구별하는 호르몬인 셈이다.

그래서 멜라토닌을 많이 먹으면 불면증이 없어지고, 외국 여행 때 시차 적응도 잘된다고 알려져 있다.

생명공학과 나노테크 등을 혼용한 '퓨전테크' 의 발전으로 생체시계의 작동 원리와 동기화 현상 등이 밝혀질 날이 멀지 않은 듯하다.

박방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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