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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요의 유래] "가늘고 낭창한 허리가 미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중국의 전통적인 미인은 당대(唐代)에는 풍만형이었다. 중국 역대 최고 미인이라고 하는 당 현종의 양귀비(楊貴妃)도 당시의 화첩이나 기록 등을 보면 사실 풍만함을 자랑하는 여인으로 묘사돼 있다.

그러나 당에 비해 훨씬 앞선 시기인 춘추전국 시대에 초나라 지방에는 가느다란 허리가 유행했다. 이른바 '초요(楚腰)' 다. 당의 유명한 시인인 두목(杜牧)은 "가느다란 초요 미인은 손바닥 위에서도 가볍다(楚腰纖細掌中輕)" 라고 읊기도 했다.

북방의 유행과는 상관 없이 남쪽 지방인 옛 초나라 지방에서는 미인의 기준이 가느다란 허리에 있었던 모양이다. 상상력과 낭만, 아울러 미술적으로는 직선보다 곡선을 더 선호했던 초나라 사람들의 관념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지금도 옛 초나라 지역에 해당하는 후베이성 사람들은 "미적인 관념에서는 우리가 북방이나 요즘 현대사회보다 훨씬 앞선 것 아니냐" 는 자랑을 늘어 놓는다.

미적인 관념은 시대에 따라 변한다. 중국 송(宋)대에 들어 오면 이 초나라 때의 '가느다란 허리' 영향을 받은 탓인지 미인의 개념은 풍만형에서 마른형으로 바뀐다.

여인의 발을 옭아 매 작게 만든 뒤 이를 감상하는 전족(纏足)의 악습도 이 때에 본격적으로 유행한다. 전족으로 변형된 기형적인 발에 가느다란 허리의 미인은 이후 줄곧 중국 문인들이 선호하는 것으로 자리잡아 왔다. 결국 중국인들의 미적 관념이 변천하는 데서 볼 수 있듯이 가느다란 허리도 절대적인 미적 기준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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