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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국제 테러와의 전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21세기형 진주만 공습을 당한 미국은 걸프전 이후 최대 규모의 군사작전을 전개할 것이 확실시되며 불특정 안보위협의 대표적인 얼굴인 국제 테러가 바로 핵심적인 대상이다.

미국의 대외정책과 군사전략은 9월 11일 대참사를 계기로 근본적으로 수정될 것이며 냉전 당시 핵전쟁과 대규모 재래식 전쟁에 대비해온 과거와는 달리 억지 중심의 전략에서 서서히 탈피, 공세적인 방어(active defense)전략으로 전환할 것으로 보인다.

*** 공세적 방어전략에 초점

국제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작금의 전쟁은 다차원적.다국적, 그리고 다방면의 양상을 띤 인류 역사상 전례 없는 복합전(hybrid warfare)을 뜻한다.

1945년 이후 미국은 수많은 전쟁을 경험해왔으며 분쟁의 스펙트럼에서 볼 때 재래식 전쟁(한국전쟁), 장기전(베트남전쟁), 저강도 분쟁(소말리아 작전), 연합작전(걸프전), 인질구출 작전(그라나다), 그리고 대량학살 예방전(코소보 작전)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다양한 분쟁 양상의 특징은 예외 없이 재래식 전력과 작전으로 수행했다는 점이다.

물론 걸프전과 코소보 사태에 전자전.스텔스 폭격기, 그리고 정밀유도탄 등의 대표적인 최첨단 무기들이 투입됐으나 비교적 정확한 공격대상과 제한된 군사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군사적 작전이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과 체니 부통령을 비롯한 미국의 수뇌들이 논의하고 있는 대(對)테러전은 전례 없는 규모의 멀티 스펙트럼전(multi-spectrum warfare)을 예고하고 있다.

걸프전을 계기로 많은 군사 전문가들은 21세기 전쟁은 바로 포괄적인 군사혁신(Revolution in Military Affairs:RMA)을 중심으로 형성될 것으로 전망해왔다.

특히 고밀도 무기체계와 월등한 우주공군력 등 인명피해를 최소화하고 실시간 정보체계를 기반으로 적의 군사력을 정확하게 파악한 후 정밀 공격을 한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RMA만으로 국제테러를 저지하는 데는 분명한 한계가 있으며 앞으로는 합동 및 통합 정보능력 향상, 특수작전 부대, 공격헬기, 그리고 고도의 유동성을 겸비한 합동군사력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은 1945년 이후 각종 군사개혁 작업에 착수했으나 9월 11일 테러 공격을 계기로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며 이와 같은 근본적인 군사전략과 전력 조정 작업은 최소한 10년 이상 소요될 것이다.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을 포함한 주요 우방들은 정확한 군사적 존재이유를 확보하지 못한 채 소위 불특정 안보위협이라는 모호한 구호를 외쳐왔다.

그러나 국제테러가 새로운 군사적 대상자로 급부상하고 있다. 전통적인 전쟁의 개념은 민.관.군 및 자국과 타국의 각기 다른 전쟁 관련 임무와 역할을 준수해왔으나 대국제테러전은 더 이상 이와 같은 편의상의 역할 분담이 불가능해졌다.

즉 미국 중앙정보국(CIA)을 위시한 연방수사국(FBI)과 국가안보국(NSA)을 포함한 각종 정보기관은 통합정보기능을 한층 더 발휘해야 함은 물론 국제경찰(lnterpol)과 유럽경찰(Europol)등 지역 및 관련국가의 정보기관들을 실시간으로 연결하는 범 국제적인 정보 네트워크가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

*** 정보능력 향상 주력할 듯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는 1945년 창설 이후 최초로 집단안보 조항인 제5조를 발동시켰으며 19개 회원국들은 미국의 테러 공격은 범 나토 차원의 공격으로 인식하고 있다.

예상되는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및 기타 국가에 대한 공격과 범죄자 색출 작업은 멀고먼 국제테러전의 첫 단계에 불과하다.

앞으로 보이지 않는 적과의 전면전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미국의 주요 우방인 한국 정부도 이에 수반되는 책임과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이스라엘과 한국은 그동안 각종 테러 공격의 표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대응과 우리의 대응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차이를 보여왔다. 이제 이와 같은 격차를 자발적으로 줄이는 것이 한국 안보의 주요 과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李正民(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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