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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테러 배후 끝까지 밝혀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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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상상조차 하지 못한 대참사 앞에 전세계가 경악하고 있다. 납치된 민간여객기가 차례로 '자살폭탄' 으로 돌변해 대형 빌딩을 덮쳐 순식간에 수만명의 희생자를 낸 재앙적 테러극이 눈앞의 현실로 펼쳐졌다.

미국 경제력과 군사력의 상징이라 할 뉴욕 세계무역센터 건물과 워싱턴의 국방부 청사 등 미국의 심장부를 강타한 동시다발적 테러는 미국에 대한 선전포고나 다름없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사실상의 준전시상태를 선포하고 철저한 응징과 보복을 다짐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당장 미국으로서는 사태 수습과 함께 정치.경제적 파장을 최소화하는 것이 급선무다. 향후 예상되는 추가 테러 가능성에 철저히 대비하면서 진상규명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그러나 미국의 딜레마는 지금까지는 적이 분명치 않다는 점이다.

이슬람권 반미(反美)테러의 핵심 인물로 알려진 오사마 빈 라덴의 조직이 일단 배후로 의심받고 있지만 아직 불분명한 상황이다. 미국은 누구도 시비를 걸 수 없는 철저하고 엄정한 수사와 조사를 통해 테러의 배후를 끝까지 추적함으로써 자칫 섣부른 보복이 불러올 수 있는 '피의 악순환' 을 막아야 한다. 전세계는 미국의 결연한 의지와 용기를 지켜볼 것이다.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이번 참사를 통해 21세기 탈냉전시대의 국제평화와 안전을 위협하는 적의 존재가 분명해졌다. 베일 뒤에 숨어 무고한 인명에 대해 무차별 공격을 감행하는 익명의 테러리즘은 그 어떤 명분과 논리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반문명적 범죄행위다.

우리는 '피의 화요일' 을 테러리즘에 대한 문명사회의 선전포고일로 기억할 것이다. 테러리즘의 광기(狂氣)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 전쟁은 계속될 것이다.

이번 사태에서 보듯 테러는 어느 한 나라만의 문제일 수 없으며, 어느 한 나라만의 노력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세계는 테러 근절을 위한 국제적 연대를 강화하고 유기적이고 효과적인 공조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불량국가' 의 미사일 공격 위험을 상정한 부시 행정부의 미사일방어(MD)체제의 타당성도 이 기회에 재검토해야 한다.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미국의 방어망이 이토록 허망하게 뚫린 것은 미사일이나 핵 때문이 아니라 단지 몇명의 테러범이 소지한 흉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미국은 유념해야 한다. 테러 방지는 국제사회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

부시 행정부가 미국의 일방주의적 외교노선에 대한 국제사회의 불만에 유의해야 할 이유 가운데 하나가 여기에 있다.

우리도 여러 차례 테러로 피해를 본 뼈아픈 상처를 갖고 있다. 테러 방지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특히 내년 월드컵 대회를 앞두고 테러 방지 대책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이번 참사가 남북대화나 북.미관계에 미칠 파장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은 북한을 이란.이라크 등과 함께 테러지원국으로 분류해 놓고 있다.

미사일과 핵 문제 등에서 앞으로 미국이 더욱 철저한 확인과 검증을 북한에 요구할 가능성이 있고, 그렇게 되면 북.미대화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정부는 '9.11 대참사' 가 한반도 긴장완화와 화해 기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

햇볕정책의 기본노선은 유지하되 '햇볕' 때문에 소홀할 수 있는 우리의 국방.안보 자세를 재점검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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