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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테러 대전] 한국경제 직격탄 맞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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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이번 사태는 미국인들이 "적(敵)이 누구인지를 몰라 진주만 피습 때보다 더 심각하다" 고 말했듯,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이 어렵다는 게 큰 문제다. 이 때문에 경제에 미칠 영향도 현재로선 섣불리 단정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다만 경제전문가들은 "여러 정황으로 볼 때 1990년 걸프전 때 벌어졌던 '미국 발(發) 세계 불황' 보다 세계 경제가 더 나빠질 가능성이 크며,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도 심각한 타격이 우려된다" 고 입을 모았다.

◇ 세계 경제=황민하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국제통상팀장은 "미국의 소비 위축과 월가의 기능 마비가 문제" 라고 말했다. 테러를 당한 세계무역센터는 모건스탠리를 비롯해 세계 유수의 금융기관들이 입주해 있었다. 이들이 주도해온 대기업 인수.합병(M&A), 글로벌 투자도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

테러에 따른 정신적인 충격과 주가 하락, 실물경기 침체에 따른 소득 감소 등으로 미국의 소비 심리가 위축될 가능성도 크다. 그간 미국 경기가 가라앉는 가운데에서도 유일한 버팀목이었던 소비마저 위축되면 미국의 경기 회복은 더 늦어질 것이고, 이는 유럽.일본을 포함한 세계 경제에도 큰 악재가 될 것이란 전망이다.

다만 경기가 워낙 나빠지면 대대적인 경기부양책이 나올 것이란 기대감도 있다.

김창록 국제금융센터 소장은 "미국.유럽이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통화공급을 확대하는 등 선진국간 공조가 적절하게 이뤄지면 오히려 경기 회복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며 "결국 이번 사태가 얼마나 빨리 수습될지가 관건" 이라고 말했다.

◇ 국내 경제=현대경제연구원은 이날 '낙관.비관' 의 두 시나리오를 발표하고 "비관적인 경우 올 한국 경제성장률(GDP 기준)이 기존 전망치보다 0.5~0.8%포인트 더 낮아진 3~3.3%에 그치고, 내년에는 당초 예상보다 0.8~1.2%포인트 하락한 3.5~3.9%에 머물 것" 이라고 전망했다.

연구원은 또 올 수입은 고유가 등으로 10억달러가 늘고, 수출은 미국 및 선진국 시장 위축으로 12억~15억달러가 줄어 경상수지 흑자폭은 당초 전망치 1백억달러에서 약 70억~80억달러로 줄 것으로 분석했다.

특히 ▶유가상승.자본조달 비용 증가 등으로 국내 산업의 경쟁력 약화가 우려되며▶현대투신.대우차.하이닉스 반도체의 해외 매각이 늦어지고 외국인 주식투자 자금이 이탈할 경우 한국 경제의 구조조정이 지연될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삼성경제연구소도 이날 ▶미국.아랍간 대결 본격화▶대결 장기화▶일정기간 경과 후 정상 회복 등 세가지 시나리오를 전제로 내년 거시경제 전망치를 수정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한국무역협회는 "단기적으로는 수출 운송 차질(하루 3천만달러)이, 장기적으로는 세계경기 회복 지연이 문제" 라며 "특히 수출 비중이 높은 반도체.휴대폰.컴퓨터 산업이 영향을 받을 전망" 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대책으로 ▶항공.해운 등 물류시스템 조기 회복▶수출시장 다변화▶국내 내수 촉진▶대미 통상마찰 완화▶동북아 경제협력 강화 등을 제시했다.

윤순봉 삼성경제연구소 상무는 "미래가 워낙 불투명해 기업들이 전략을 세우기 어려운 상태지만 원자재값 폭등에 대비해 원가절감 노력을 하고, 현금흐름과 생존을 우선으로 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며 "수출이 직격탄을 맞으면 내수 기업들도 영향을 받을 것이기 때문에 외환위기 직후인 97~98년보다 더 어렵다고 보고 대비를 해야 한다" 고 말했다.

민병관.차진용.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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