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산은 산 물은 물 (7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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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71. 독초 소동

그 날도 장에 갔다가 혼자서 지고 메고 들고온 짐을 풀어놓고 땀을 훔치고 있었다. 그동안 별 말이 없던 성철스님이 다가왔다.

"원주 시켜놓았디만 장똘뱅이 다 됐네. "

한다고 열심히 하고 있는데, 이 무슨 말인가. 어리둥절해 있는데 성철스님의 말씀이 이어졌다.

"밭에 있는 거 먹으면 됐지, 뭐 한다고 장날마다 장보러 다니노? 먼젓번 원주는 장도 안보고 잘 살더니만, 니는 웬 장날마다 장보러 다니노? 참선이나 잘하라고 원주 시켰디만 참선은 안하고 영 장똘뱅이 아이가. "

안쓰러워 그러는지, 정말 나를 장똘뱅이 취급하시는지 잘 분간이 되질 않았다. 그렇게 질책 아닌 질책을 듣고 며칠이 지났다. 경남 울주군에 있는 비구니 절인 석남사 스님 10여명이 큰스님께 문안 드리러 왔다. 비구니 스님들이 큰스님께 인사 드리고는, 큰 대나무 소쿠리를 달라기에 몇 개 주었다. 비구니 스님들이 모두 뒷산으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두 시간 지났을 무렵, 스님들이 소쿠리 가득 풀잎(□)을 뜯어 와선 샘가에서 씻고 있었다. 바로 그 때 성철스님이 나왔다.

"지금 너거들 뭐하고 있노?"

나이가 들어 보이는 한 스님이 대답했다.

"아이고 큰스님, 뒷산에 올라가니 이렇게 좋은 산나물이 꽉 차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산나물로 반찬하려고 씻고 있습니다. "

성철스님이 나를 은근히 노려보며 한마디 했다.

"그래, 우리 원주는 산에 있는 이런 좋은 산나물은 뜯어 먹을 줄 모르고 장날마다 장에 가 사와야 직성이 풀리는 기라. 내가 장똘뱅이 짓 고만해라 해도 소용이 없어!"

말을 마치자마자 휙 돌아서 방으로 들어가 버리셨다. 비로소 뭐가 잘못됐는지 알았다. 산나물로 끼니를 잘 해결하고 비구니 스님들은 떠났다. 아니나 다를까. 시자(侍者.큰스님을 모시는 젊은 스님)가 부른다. '죽었구나' 싶은 생각에 풀이 죽은 채 성철스님의 방으로 들어가 먼저 절을 올렸다.

"니 오늘 그 비구니 스님들 산에 올라가 산나물 뜯어 오는 거 봤제□ 그동안 니가 어째 하는가 두고봤는데, 이제 더 못보겠다. 다시는 장에 가지말고, 산나물 뜯어 먹어라이. 한 번 더 장에 가면 당장 쫓아 버리뿐다. "

다음날부터 당장 소쿠리를 들고 뒷산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도대체 어떤 풀이 먹는 것인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산에는 독초(毒草)가 많다는데, 함부로 뜯어갈 수도 없고 난감했다. 대강 뜯어가며 산을 오르내리던 중이었다. 애기 손가락만한 굵기로 키가 30~50㎝ 정도 되는 덤불숲을 이루고 있는 풀이 있어 한 가지 꺾었다. 마침 동네 아주머니가 올라오기에 물었다.

"이거 먹을 수 있능교?"

"아이고 스님, 그거 고사리 아임니까? 스님은 고사리가 어째 생겼는지도 모르면서 산나물 뜯으러 다니능교?"

그렇게 몰랐다. 동네 아낙한테까지 핀잔을 들어가며 조금씩 배워갔다. 초여름이 되니 햇순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장에 나가지 않고 백련암 주변 산을 몇 달간 헤매며 산나물을 꺾어다 먹었는데, 아무래도 반찬 나물이 모자랐다. 당시 백련암 경내엔 원추리(망우초)가 많았는데, 햇순을 삶아 원추리 나물을 해 먹기도 했다.

하루는 뒷산 위쪽 대신 일주문 밖 아래쪽으로 내려가 나물을 소쿠리 가득 뜯어와 샘가에서 열심히 씻고 있었다. 어느새 성철스님이 나와 어깨 너머로 나물 씻는 모습을 유심히 살펴봤다. 그 가운데서 유난히 색깔도 곱고 잎도 두툼한 풀잎을 하나 집어 들고는 나에게 물었다.

"니, 이거 무슨 풀잎인지 아나?"

뭔지 모르지만 솔직하게 대답했다.

"빛깔도 곱고 잎이 두툼한 것이 보기에 좋아 꺾어 왔심더. "

성철스님이 고함이 터져나왔다.

"이 자슥이 대중(스님들) 다 죽이겠네!

이 잎은 사람이 먹으면 죽는다는 초우 아이가. 독초다 독초, 이놈아! 니는 그것도 모르고 꺾어 오나!"

한참 꾸중을 들었다. 큰스님이 꾸중을 마치며 한마디 내뱉고는 돌아섰다.

"니는 아무래도 안되겠다. 내일부터 장 봐 묵어라. "

원택 <성철스님 상좌>

정리=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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