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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먼삭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63호 33면

“지나친 자부심이나, 이기심, 오만이나 제 잘난 맛 같은 것들이겠지요. 이런 게 고개를 들면 말입니다. 궤도에서 이탈하는 것은 바로 그런 때입니다.”

남윤호의 시장 헤집기

1992년 골드먼삭스의 공동대표 로버트 루빈이 한 말이다. 월가의 한 투자전문지와의 인터뷰에서 “골드먼삭스가 흔들릴 만한 요인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고서다. 잘나갈 때 조심하라는 뜻이다. 그는 재임 시절 경영진에게 ‘과신’을 늘 주의하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요즘 골드먼삭스, 너무 과신했던 탓일까, 코너에 몰렸다.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제소에다, 주주 소송까지 걸렸다. 여론도 우호적이지 않다. 불황에 고통 받는 사람들에겐 월가의 공룡이야말로 금융위기의 원흉으로 비치는 법이다.

그럼 이걸로 골드먼삭스는 완전히 맛이 간 걸까. 골드먼삭스의 과거사를 보면, 그렇진 않을 것 같다. 골드먼삭스는 여러 번 난관에 빠졌지만, 그때마다 헤쳐 나오곤 했다.

소송은 대개 고객 보호와 관련된 경우가 많았다. 70년 골드먼삭스는 파산 직전의 펜센트럴 철도의 기업어음 발행 업무를 해주고 있었는데, 고객에게 이 회사의 재무정보를 자세히 알려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SEC의 제재를 받았다. 금융사로서 신뢰에 큰 흠집이 날 사건이었다. 펜센트럴이 발행한 어음이 8700만 달러어치였으니, 당시 골드먼삭스의 자본금 5300만 달러보다 더 큰 손해배상 소송을 당할 판이었다. 이때 골드먼삭스는 어음을 액면가의 20~25%로 되사고, 펜센트럴의 경영이 좋아진 뒤 잔액을 갚아준다는 협약으로 궁지를 벗어났다.

87년엔 골드먼삭스의 파트너인 로버트 프리먼이 사무실에서 체포돼 수갑을 차고 끌려가는 일이 벌어졌다. 내부자거래를 했다는 혐의였다. 골드먼삭스는 사운을 걸고 총력 대응했다. 하지만 3년 뒤 프리먼 스스로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거래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고 말았다. 파트너가 교도소에서 복역하게 된 전무후무한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다만 골드먼삭스가 제재를 받진 않았다.

90년대엔 파산한 영국의 미디어 기업인 맥스웰 그룹과 거래하다 사기 등의 혐의로 소송에 몰렸다. 골드먼삭스는 95년 유럽과 미국의 소송에서 2억5000만 달러의 합의금을 지불했다. 그 뒤에도 골드먼삭스는 1년 넘게 영국 언론의 집중사격을 받아야 했다.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골드먼삭스는 위기 대응 능력을 갖추게 된 듯하다. 이건 돈만으론 어렵다. 골드먼삭스 출신의 리사 엔들리치는 99년 펴낸 『골드먼삭스』에서 그 비결을 독특한 기업문화로 돌린다. 경영진의 강한 결속력, 개인보다 팀워크를 중시하는 분위기, 정교한 보상 시스템, 직원에 대한 믿음 등이 특유의 기업문화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여기에 미국 정·재계에 포진한 골드먼삭스 인맥도 든든한 방패라고 한다.
그런 골드먼삭스도 이번엔 긴장 좀 해야 할 것 같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개혁 의지와 반금융 정서가 개혁의 ‘스위트 스폿’을 형성해 골드먼삭스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월가뿐 아니라 세계 금융시장이 숨을 죽이고 바라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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