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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부터 읽을까] 중남미 문학이 궁금할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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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중남미 문화는 비유컨데 우리보다 더 많은 재료를 넣은 비빔밥이다. 터줏대감인 인디오 문명 위에 중동과 로마의 피가 섞인 스페인 문명이 덧칠됐고, 아프리카와 아시아 맛까지 가미되었다.

그러나 재료를 잘 섞어주고 맛을 내는 고추장이 빠져 있어서일까?

그 이질 요소들은 때론 폭력, 쿠데타, 각종 이데올로기의 실험, 테러 등으로 콩가루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이들에게도 우리와 비슷하게 한(恨)이 있는 것을 나는 느낀다.

단, 우리의 잦아드는 한과 달리 이들은 폭발하는 듯한 열정의 한이다. 이런 복합적 요소를 가장 무겁게 끌어안은 것이 문학장르다. 첫 노벨상 수상자를 낸 1945년 이래 무려 네명의 수상작가를 배출한 세계문학의 신(新)엘도라도이기도 하다.

늦겨울 안개 자욱한 8월 나는 부에노스의 강변을 따라 마리아 에스텔 바스케스와 함께 걸었다. 가장 인정받는『보르헤스 전기』의 작가가 그이다. 그녀에게서 대문호 보르헤스의 체취를 느끼지만, 사실 그는 나의 중남미 문학의 독선생이기도 하다. 그의 말이 이렇다. "이곳 글쟁이들은 현실과 꿈을 애써 떼어놓지 않아요. 일상의 현실이 이미지의 날개를 달면 마술적 리얼리즘이 되는 것 아닌가요□" 그렇다. 이제 중남미 문학동산을 날아보자.

먼저 만날 작가는 중남미 문학의 대부인 니카라과의 시인 루벤 다리오다. 그가 1888년 발표한 『푸름(Azul)』에 수록된 작품들은 지금 읽어도 갓 구어낸 빵처럼 맛있다. 45년 노벨상을 수상한 칠레의 여성시인 가브리엘라 미스트랄은 풍부한 감성과 역동적 표현이란 유산을 남겼는데, 『죽음의 단시』『황폐지』 등에 그것이 담겨 있다.

여기에 전설이 된 아르헨티나의 보르헤스, 그를 언급해야 한다. 중남미 문학의 특징인 환상적 사실주의, 해체주의, 마술적 리얼리즘이 모두 그를 맏형으로 삼고 있다. 『불한당들의 세계사』『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열기』『칼잡이들의 이야기』(이상 민음사) 등을 모두 읽어보기 바란다.

이와 함께 빠뜨릴 수 없는 작가가 멕시코의 후안 룰호이다. 『뻬드로 빠라모』와 『평원의 불꽃』을 읽으면 그가 평생 매달린 죽음이라는 화두에 대해 어떤 새로운 느낌을 갖게 될 것이다. "죽은 사람들의 울음소리를 들어 보셨나요?" 라고 나는 묻고 싶다. 답은 『뻬드로 빠라모』에 있다. 라틴 아메리카 문학에 새로운 장을 쓴 아르헨티나의 소설가 훌리오 코르타사르는 장편 『라유엘라』로 유명하다. 실험정신이 빼어난 작품으로 언어예술의 정점을 밟게 해준다.

보르헤스를 신으로까지 생각해, 혹시 만난 뒤의 실망이 두려워 만남을 피했던 카를로스 푸엔테스는 보르헤스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다. 73세인 그는 『라틴아메리카의 역사』(까치)『묻혀진 거울』『가장 투명한 지역』 등 픽션과 논픽션을 넘나든다.

영화 '일 포스티노' 로 알려진 칠레의 파블로 네루다도 빼놓을 수 없다. 71년 또 하나의 노벨상을 가져다준 그는 『20편의 사랑의 시와 한편의 절망의 노래』(민음사)로 유명하다. 민중의 고초를 담은 서사시 『총 시가집』도 놓치지 말기를.

이제 가르시아 마르케스를 만날 차례다. 가르시아만큼 마술적 리얼리즘으로 독자의 영혼의 즙을 짜낸 작가가 있을까□ 82년 그에게 노벨상을 안겨준 『백년의 고독』은 이미 고전이고, 40년 내전으로 멍든 그의 조국 콜롬비아의 현실을 실명을 써서 쓴 『납치일기』(민음사)는 그 생생한 묘사로 한번 읽기 시작하면 끝 페이지까지 그냥 달린다.

1990년 네번째 노벨상을 받은 멕시코의 옥타비아 파스의 작품은 현대인의 가슴을 적시는 샘물이다. 사랑의 노래는 누구보다 에로틱하게, 자연에서의 깨우침은 어느 노스님보다 의젓하다. 『활과 리라』(솔), 『고독한 미로』(신원문화사), 『태양의 돌』(청하), 『이중불꽃』등은 어느 것을 집어도 가슴을 적셔줄 것이다.

중남미 문인 중 가장 극적인 삶을 살다간 아르헨티나의 마뉴엘 푸익도 언급치 않을 수 없다. 동성연애자였던 그의 대표작『거미여인의 키스』(민음사)는 영화화되어 오스카상을 휩쓸었다. 이외에도 중남미에는 노벨상 수상 0순위 작가들이 몇 명 있다.

페루의 대통령후보였다가 후지모리에게 패한 미남 소설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영웅의 시간』『그린 하우스』), 두 달 전 90세가 된 아르헨티나의 에르네스토 사바토(『터널』『철과 무덤에 대하여』) 등이다. 미스터 베스트셀러 브라질인 파울로 코엘로(『알케미스트』『베로니카는 죽기로 했다』)와 또 하나의 밀리언셀러 여성작가 칠레의 이사벨 아옌데(『영혼의 집』『운명의 딸』)는 중남미 문학의 맥을 확인할 수 있다.

이강원 <시인.주아르헨티나 김승영대사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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