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엽기녀들의 합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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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우리 여자들은 몸이 근질근질해요. 그러니 남자들이여, 제발 기대를 저버리지 말아줘요. 기대를 저버린다면 이 사랑과 존경을 대체 누구에게 바치란 말이지요?" 웬 매혹의 사이렌인가 싶을 게다. 입을 헤 벌릴 남성들에게 이 사이렌은 자신의 남자 취향을 밝히려는 듯 경험담을 들려준다.

이 여성이 꽤 오래 전 TV를 보다 한 육상선수의 쫙 빠진 몸매를 보고 까무러칠 뻔했단다. 대뜸 튀어나온 말이 "페르페토 코르포!" 였다. 이탈리아어로 숭고한 육체라는 뜻이라나? 그땐 칼 루이스인 줄도 미처 몰랐던 그 선수의 달리는 모습 묘사는 아예 거품을 문다.

" 마치 스포츠카 페라리와도 같았다. 매끄럽게 질주하는, 압도적인 파워의 폭발!" 수컷 본능을 부추기는 말로 착각하기 딱 좋지만, 그건 절대로 아니다. 목소리 주인공은『로마인 이야기』의 여걸 시오노 나나미이니까.

에세이집『남자들에게』에 실린 시오노의 말은 유혹이 아니다. 그건 경고였다. 이 시대 잘디 잘아진 남성들에게 "앞으로도 못나게 굴거야□" 하고 윽박지르는 말이다. 영화 '엽기적인 그녀' 에서 선뵌 전지현의 방식!

눈을 잔뜩 부라린 채 남자친구 차태현에게 겁주는 것 말이다. 자, 정말 세상은 변하고 있다. 여인천하의 메가트렌드 징후는 출판물에서 뚜렷하다.

두어달 전 여성건축가 김진애가 '메타우먼' 이란 컨셉트를 들고 나왔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파워는 물론 섹시함을 무기로 '사랑스러운 남성들' 과 대등하게 놀겠다는 선언이다.

그의 책『새로운 종(種)의 여자 메타우먼』은 좀스러워진 남성들까지 기꺼이 안아주겠다고 하니 천만다행일까? 그런 점에서 '가슴 없는 페미니즘' 류(流)와 결별한 시오노의 배짱, 혹은 속 깊은 여성스러움과 통한다. 했더니 앞으론 예쁜 남성만을 골라 '찜' 하겠다는 여성들의 선언도 등장했다. 그게 마광수의 제자 남승희의 신간『나는 미소년이 좋다』이다.

자, 결코 장난이 아닌 이 시대 엽기녀들의 전략을 재음미해보자. 시오노가 그동안 기대를 저버려온 남성들에게 잘해보라며 머리를 쓸어주니, "차라리 여성들이 나서봐?" 하는 게 김진애.남승희다.

사회를 이 지경으로 만든 뒤 대책 없이 뭉개는 남성들에 대한 책임추궁이다. 드디어 올 게 오는 것일까? 그 무슨 파워게임 같은 게 아니라, 구한말의 예언자 강증산이 말한 정음정양(正陰正陽)후천개벽의 도래 말이다.

조우석 문화부 출판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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