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불구속 수사 · 재판 선례 남기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검찰이 언론사 사주 등 다섯명에 대해 오늘 중 구속영장을 청구키로 함에 따라 이 사건 수사가 마무리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국세청이 지난 6월 29일 언론사 사주.대주주와 법인 대표 등 12명을 고발한 지 한달 보름여 만의 일이다.

검찰은 세금 포탈 액수와 수법, 탈세에 개입한 정도 등을 기준으로 영장 청구 대상자를 선정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형사소송법은 일정한 주거가 없고 증거 인멸이나 도주 염려가 있는 때에 한해 피의자나 피고인을 구속토록 하고 있다. 불구속 수사나 재판을 원칙으로 하되 예외적으로 구속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이번 사건 수사에서도 언론사 사주 등을 불구속해야 한다고 본다. 무엇보다 이들은 도주할 염려가 없다.

또 그동안 수사를 통해 검찰이 방대한 증거물들을 확보한데다 이들이 검찰의 출석 요구에 응하는 등 수사에 협조했으므로 증거 인멸의 우려도 없을 것이다. 물론 그동안 국민의 법 감정이나 사법 현실을 감안할 때 범죄 혐의자를 구속함으로써 일정 부분 징벌적 효과를 거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오는 11월이면 국가인권위원회가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되는 마당에 과거의 관행을 답습할 수는 없지 않은가. 구속 수사는 흉악범이나 누범자 등 불가피한 경우로 국한하고 나머지 사범들에 대해서는 불구속 수사.재판의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인권 보호의 첩경이자 국가인권위 발족의 의미를 살리는 일일 것이다.

더구나 이번 언론사 세무조사 및 수사와 관련해 국제언론인협회(IPI) 같은 국제 언론기구뿐 아니라 우리 사회 내부에서도 언론탄압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통상적인 세무조사라거나 정당한 법집행이라고 강변만 할 게 아니라 유죄가 확정된 뒤 구금한다면 그같은 의혹도 어느 정도 불식할 수 있을 것이다.

누차 지적했듯이 언론이라고 해서 법집행의 성역일 수는 없다. 실정법에 어긋난 부분이 있다면 응당 법에 따라 처벌받아야 한다. 하지만 인신 구속은 신중해야 한다.

사회 지도층 인사든 일반 서민층이든 형 확정 전에 인신을 구속하는 것은 당사자뿐 아니라 가족이나 소속원들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고통과 불명예를 안겨주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이 불구속 수사.재판의 원칙을 되찾는 좋은 선례가 되기를 기대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