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다하우와 마루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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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독일 남쪽 뮌헨에서 20㎞쯤 북서쪽에 다하우란 도시가 있다. 인구 3만6천명 정도의 한적한 도시지만 독일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유대인 대학살의 무대였던 나치의 강제수용소 제1호가 이곳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1933년 3월 나치 친위대장 하인리히 히믈러가 만든 이 수용소는 당초 5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작은 규모였다.

원래 공산주의자와 노조지도자 등 정치범을 수용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규모가 커져 유대인.동성애자.집시 등이 이곳에 끌려 왔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 후에는 폴란드와 소련 등지의 포로 20만명이 이곳에 수용됐다. 45년 4월 미군이 해방하기까지 이곳에서 처형된 사람은 공식적으로 3만명. 그러나 훨씬 많은 숫자가 고문과 기아.질병으로 숨졌다.

이곳이 악명을 떨친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생체실험이었다.

말라리아 실험은 물론 기압이 얼마나 떨어지면 인체가 터지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저기압실험' , 인간이 얼마나 추위에서 버티다 죽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저온실험' 등을 실시했다. 현재 기념관으로 바뀐 이곳은 독일인들에게 산교육의 현장이 되고 있다.

기념관 출구에 쓰여 있는 조지 산타야나의 저 유명한 경구(警句)에 오늘도 독일인들은 숙연해진다. "과거를 잊는 사람은 과거를 반복하는 벌을 받는다. "

일제는 나치보다 더 악랄한 생체실험을 자행했다. 정현웅의 장편소설 『마루타』로도 잘 알려진 관동군 731부대는 마취 없이 사람을 해부하는 등 극악무도한 만행을 저질렀다.

이시이 시로(石井四郞)중장이 창설한 이 부대는 특히 갖가지 세균전 실험으로 악명을 떨쳤다.

'통나무' 란 뜻의 '마루타(丸太)' 로 불린 3천여 생체실험 희생자 가운데는 물론 조선인들도 있었다. 이 부대가 있던 만주 하얼빈의 핑팡(平房)에 세워진 '731부대 죄증(罪證)진열관' 은 일제의 잔학상을 생생히 증언하고 있다.

한 중소기업인의 노력으로 충남 아산에 '마루타 박물관' 이 생긴다는 보도다. 마침 광복절을 맞아 참으로 뜻있는 일이다.

일본이 제대로 된 나라라면 독일처럼 자진해 이런 기념관을 일본에 만들어야 한다.

그런 다음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소란을 피우는 대신 이 기념관을 찾아 참회해 보라. 모두가 일본을 다시 볼 것이다.

히로시마에 '평화공원' 이란 것을 만들어 '우리도 피해자' 라고 주장해 봐야 전세계가 코방귀를 뀔 뿐이다.

유재식 베를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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