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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式 강요하는 애플, 스마트폰 주도권 유지할까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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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호 34면

2006년 초 삼성전자는 새로운 디자인의 보르도 LCD TV를 내놨다. 전문가들은 번쩍거리는 검정 테두리가 시청에 방해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보르도는 삼성전자가 소니를 제치고 TV 시장의 주도권을 잡는 데 선봉 역할을 했다. 다음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소비자 가전 쇼(CES)’에선 거의 모든 전자업체가 삼성의 디자인을 ‘매우 많이’ 참고한 제품을 앞다투어 전시했다. 돈줄을 쥐고 있는 주부들이 화질 못지않게 화면이 꺼져 있을 때의 인테리어에도 관심을 갖는다는 점을 뒤늦게 주목했기 때문이다.

김창우 칼럼

5년째 전자·통신 분야를 담당하다 보니 이런 일이 드물지 않다. 지난해 말 애플 아이폰의 국내 출시가 확정됐을 때 기자는 KT 홍보실 직원과 내기를 했다. 연말까지 12만 대 이상 팔리면 ‘커피를 사겠다’는 것이었다. 아이폰은 지난해 12월에만 20만 대 이상 팔렸고 반 년도 안 돼 50만 대를 넘어섰다. 당시까지 제일 잘나가던 스마트폰인 옴니아의 판매량이 14만 대였다는 것만 생각했지 일반 풀터치폰 사용자까지 아이폰으로 몰리는 상황은 예측하지 못했다.

요즘 세간에선 애플이 단연 인기 있는 화제다. 아이폰 얘기가 좀 잠잠해질 만하니 아이패드가 나왔다. 스티브 잡스 애플 CEO는 “첫날 팔린 30만 대를 포함해 일주일 동안 모두 45만 대의 아이패드를 팔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올해 500만 대 안팎의 아이패드가 팔릴 것으로 전망한다. 아이폰의 진화도 계속된다. 잡스는 아이폰OS 4.0도 공개했다. 제한적인 멀티태스킹 기능을 넣고 애플리케이션을 폴더별로 관리할 수 있는 기능도 추가했다. 올 하반기에 배포할 예정인데 기존 아이폰3GS도 무료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사용자들은 “아이폰이 갈수록 완벽해지고 있다”고 환호한다.

기자로선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것처럼 자꾸 틀리기만 해서 앞날을 예측하기 민망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안드로이드가 1~2년 안에 아이폰을 제치고 스마트폰 플랫폼의 주도권을 잡을 것으로 본다. 아이폰이 완벽해지는 만큼 애플의 폐쇄적인 생태계가 시장 확대의 발목을 잡는 역설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애플은 아이폰 단말기에서 독자적인 OS, 응용프로그램 장터인 앱스토어, 음악·동영상 콘텐트 시장까지 모두 장악하고 있다. 애플이 지난해 4분기 874만 대의 아이폰을 팔아 매출 157억 달러, 순익 34억 달러를 올린 원동력이다. 하드웨어에서 콘텐트까지 애플이 독식하는 현상이 빚어지자 휴대전화 제조업체와 이동통신업체들이 애플 견제에 나섰다.

하지만 애플은 아이폰OS 4.0을 공개하며 폐쇄정책을 더 강화했다. 개발자들이 다른 업체의 크로스컴파일러를 사용해 아이폰 앱을 개발하는 것을 금지한 것이다. 크로스컴파일러는 특정 컴퓨터 언어로 짠 프로그램을 다른 언어로 변환해주는 소프트웨어다. 앱스토어에 등록하려면 맥용 프로그래밍 언어부터 배우라고 요구하는 셈이다. 당장 아이폰용 크로스컴파일러인 ‘플래시CS5’를 내놓을 예정인 어도비가 “애플을 불공정 행위로 법원에 제소하겠다”고 나섰다. 겉보기에는 어도비와의 싸움으로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안드로이드나 윈도폰 같은 다른 플랫폼과 차별화하겠다는 애플의 전략이 담겨 있다. 개발자들이 윈도 PC로 모바일용 앱을 만들어 아이폰·안드로이드·윈도모바일·심비안 등 다양한 플랫폼으로 내놓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다. 수십 명의 개발자를 거느린 대형 업체가 아닌 다음에야 아이폰에 ‘올인’하거나 앱스토어를 떠나는 양자택일을 압박받고 있는 것이다. 개발자들의 이탈이 현실로 나타나면 다양한 앱이라는 아이폰의 장점이 퇴색할 수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세계 스마트폰 시장은 전체 휴대전화 시장의 15%(1억8000만 대)를 차지했다. 그중 노키아가 40%, 아이폰과 블랙베리가 각각 20%를 점유하고 있다. 안드로이드는 아직 점유율이 한 자리 숫자이지만 급성장하는 추세다. 어느 업체나 이를 채용한 단말기를 만들 수 있고 앱 제작에도 제한이 없다는 개방성이 장점이다. 애플은 스마트폰 분야에서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아이콘이다. 하지만 폐쇄정책으로는 시장 주도권을 잡기 어렵다. 1980년대부터 독자 생산을 고수한 맥PC는 시장 쟁탈전에서 인텔·MS·HP 등이 뭉친 IBM 호환 PC에 밀렸다. 최근 구글·아마존·삼성전자 등이 ‘반(反)애플 동맹’을 형성했다. 몇 년 지난 뒤 애플의 ‘우리 식대로’ 전략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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