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시평

미국 의회는 한·미 FTA 비준을 서둘러야 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5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공식 서명이 있은 지 3년이 지났다. 양국 상생의 경제적 효과, 미국의 경제회복과 일자리 창출뿐 아니라 아시아 지역에서의 미국 위상에도 크게 도움이 되는데도 불구하고, 미국 의회의 비준 동의를 언제 받을 수 있을지 안타까운 마음이다.

한국이 이처럼 발전하기까지 미국은 많은 도움을 줬다. 경기도 가평고등학교는 미 40사단 장병들의 모금으로 설립됐다. 오늘날까지 주한미군사령부가 장학금을 전달해 그 전통이 60년간 이어지고 있다. 연천전투를 치르고 난 뒤 당시 사단장 조셉 클릴랜드 소장이 천막 아래서 공부하는 150여 명 학생의 모습에 감동해 전 장병의 성금을 모았고, 장비와 물자를 동원하고 자원봉사했다고 한다. 미 공군은 1·4후퇴의 일촉즉발 상황 속에서 수송기로 수백 명의 고아를 제주도로 이주시켰다. 이 작전을 담당한 헤스 대령은 제주도에 천사고아원을 설립했다. 나중에 미국 교회의 목회자가 되어서도 교인들의 성금을 해마다 보내왔다고 한다. 이 실화를 토대로 록 허드슨 주연의 ‘전송가’라는 영화가 나왔다.

뉴욕에서 근무하고 떠날 때 뉴저지 웨인 성당의 레너드 라루 신부님을 찾아뵙지 못한 것이 지금도 후회된다. 라루 신부님은 젊을 때 ‘메러디스 빅토리’라는 미국 상선의 선장이었다. 맥아더 사령부의 명령으로 동원돼 1950년 12월 23일 마지막으로 흥남을 철수하는 임무를 맡았다. 1000명도 탈 수 없는 배에 1만4000여 명을 태워 이틀 후인 12월 25일 거제도에 도착했다. 살을 에는 한겨울 추위의 배 위에서 다섯 명의 신생아가 태어나는 등 여러 가지 기적이 일어났다. 그 과정들이 빌 길버트의 『기적의 항해(Ship of Miracles)』라는 책으로 나왔고, R J 맥해턴 감독이 최근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했다.

미공군협회의 한국지부인 미그앨리 총회에서는 해마다 한·미 친선 골프행사를 개최한다. 이때 성금을 모아 미국 대학에 진학하는 미 공군 하사관들의 자녀와 한국군 카투사 사병들에게 장학금으로 전달한다. 6·25전쟁 60주년인 올해에는 우리나라 기업인들의 참여가 더욱 적극적이다. 해마다 참여하는 기업인들도 많다. 전투기 조종사 탑건들과의 골프라는 색다른 경험이 매력적이기도 하지만 미국의 역할에 감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들은 한국이 백척간두에 서 있던 그때 미국이 지원하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없다고 입을 모은다. 우리의 경제 개발도 미국의 경제 협력과 거대한 시장 때문이라고 말한다.

리먼 사태 이후 세계적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 미국 쇠퇴론과 기축통화 교체론이 활발하게 제기됐다. 그때도 필자는 칼럼을 통해 오히려 미국의 반전과 달러의 기축통화 위치 불변을 이렇게 예측했다(2008년 11월 15일 조선일보). “미국의 투명한 제도, 혁신능력 및 창의성 때문에 다른 강대국보다 더 신속하게 회복될 것이며, 경기침체로 미국의 자산 및 기업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평가돼 있어 외국인 직접투자가 대거 미국으로 유입될 것이다. 채무가 자국 발행 통화여서 인플레이션 속도에 따라 미국의 실질적인 채무상환 부담은 줄어들 것이다.” 요즘도 국제 유동성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달러 사재기가 일어난다. 결국은 미국이 승리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일본이 때를 놓친 재정·통화정책을 미국은 논란의 가운데에서도 신속하게 실행했다. 일본이 10여 년 걸려도 제대로 못한 것을 1년 만에 완료했다.

은행들도 악성채무 청산과 구조조정에 나서 구제금융 수천억 달러를 반년도 안 돼 다 갚았다. 일반 기업들도 비용 삭감과 효율성 제고에 박차를 가해 1년 사이에 생산성을 크게 높였다.

수십만 미국 젊은이의 희생의 대가로 지켜낸 대한민국은 미국의 건국이념인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의 혈맹이다. 한·미 FTA를 비준하면 단순한 양국 경제 협력 차원을 넘어 광대한 아시아 시장의 전초기지로서 활용할 수 있다. 그러니 궁극적으로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된다. 오바마 대통령이 연초 국정연설에서 강조한 200만 개의 일자리 창출도 수출로 통한다.

한·미 FTA야말로 미국이 수출을 두 배로 늘리고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첩경이다. 두 나라 간의 관세, 세제, 기준 문제도 상당 부분 해소될 것이다. 자동차산업 등 일부분만 보고 보호무역의 길로 들어서면 미국의 국제 리더십은 약화될 것이다. 미국 의회가 대승적 차원에서 비준을 서둘러야 한다.

김수룡 도이치은행그룹 한국 회장 미공군협회 미그앨리 명예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