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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 '화엄석경' 탁본 완성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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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전남 구례 화엄사(주지 종걸) '화엄석경' (華嚴石經.보물 제1040호)의 조각 2만여점에 대한 탁본작업이 최근 완료됐다. 이로써 석경 복원 작업은 물론 이에 관한 연구가 본격화할 계기가 마련됐다.

계명대.원광대 서예과 학생 34명과 함께 한달간 탁본 작업을 진행한 한국서예금석문화연구소 한상봉 소장은 "총 2만여점의 조각 가운데 훼손상태가 심한 6천2백여점을 제외한 1만4천여점은 탁본을 통해 판독이 가능했다" 고 밝혔다.

탁본 작업에는 고려대장경연구소 등이 함께 참여했다.

화엄사 화엄석경은 납석이라는 돌에 예리한 칼로 화엄경의 방대한 내용을 새긴, '돌 경전' 이다.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통일신라시대의 의상대사가 문무왕 10년(670년) 화엄사 중창시 장육전(지금의 각황전)을 건립하면서 네 벽을 흙 대신 화엄경을 새긴 돌로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화엄의 세계를 다룬 국내 유일의 대규모 석경으로 신라 금석문화와 석재가공기술의 축약판이다. 현재 석경으로는 세계적으로 중국의 방산석경과 석교석경, 그리고 화엄석경을 꼽고 있다.

이번 탁본의 완성으로 석경의 원본(原本)이 무엇인가를 따지는 연구가 가능하게 됐다. 화엄경은 중국 동진(東晋)시대 불타발다라가 번역한 60권본과 당(唐)대 실차난타가 번역한 80권본, 당대 반야가 번역한 40권본이 있다.

화엄석경의 원본이 이 가운데 어느 것인지가 규명돼야 전체를 복원할 수 있는 것이다. 한소장은 "탁본의 분량 등을 고려할 때 60권본이나 80권본 중의 하나 일 것 같다" 고 추론했다.

이밖에 탁본은 서체와 전각기법을 명확히 확인할 수 있어 서예사적이나 금석학적인 측면에서 중요한 자료로 평가할 만하다. 서예가이자 금석학 전문가인 한소장은 "화엄석경에는 중국 북위(北魏)와 육조(六朝), 당해(唐諧)가 서체의 주류를 이르고 있지만 간간이 약간 흘려 쓴 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서체도 발견돼 놀라웠다" 고 평가했다.

판독 가능한 탁본은 앞으로 고려대장경연구소의 전산화 작업을 통해 연구자료로 축적된다. 화엄사는 이를 학문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10월 금석연구가.서예가.불교미술가.역사학자.석질연구가 등을 모아 학술대회를 연다. 또한 화엄사는 장차 경내에 보장전을 건립해 이를 전시 보관할 계획이다.

이번 탁본 작업을 통해 새로운 사실도 발견됐다. 조각난 돌에 쓰여진 일본 글자의 흔적을 통해 일제가 1935년과 38년 두차례에 걸쳐 상태가 좋은 상당량의 석경을 가져간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이 때 같이 있었던 변상도(變相圖)도 가져간 것으로 한소장은 추론했다. 화엄사는 일본의 몇몇 박물관에서 이를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이를 찾아 되돌려 받겠다는 뜻을 밝혔다.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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