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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노래기 박사' 임길영 장학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노린내가 많이 나고 징그러운 '노래기' 가 난치병 치료에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할 것으로 확신합니다. "

'한국산 노래기강(綱)의 분류' 라는 논문으로 이달에 전북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는 전북도교육청 임길영(林吉榮.51)장학사.

그는 낙엽.퇴비 밑에 사는 절지동물인 노래기에 관한 한 국내 유일의 전공자다. 지네와 비슷하게 생긴 노래기는 몸 길이가 통상 2~30㎜ 가량. 하지만 이따금 10㎝가 넘는 것도 발견된다. 검은 갈색을 띠고 있으며 몸을 건드리면 둥글게 말아 움츠린다.

林장학사는 이번 학위 논문에서 토종 노래기 50여종의 특징과 지역적 분포 등을 체계적으로 분석했다.

"노래기의 분비물은 독성이 매우 강합니다. 지렁이 등 무척추동물이 이 물질에 접촉하면 죽을 정도입니다. 노래기는 습지에 살지만 곰팡이균을 퇴치하는 물질을 체내에 갖고 있죠. "

그는 "선진국 제약업계는 노래기에서 에이즈.암 등을 치료할 수 있는 신물질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이 벌레를 열심히 연구하고 있다" 고 말했다.

林장학사는 1986년 우연한 기회에 노래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후 15년 동안 그는 교사와 장학사로 일하면서 틈틈이 국내는 물론 러시아.독일.일본 등 외국의 산과 들에서 노래기를 잡아 연구해 왔다. 지금까지 노래기 표본 5천여점을 모았고, 관련 논문 10여편을 국제 학술지에 발표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익산 노래기' 를 세계 최초로 발견, 학계에 보고했다.

울릉도 성인봉 등 외딴 섬과 산 등에서 노래기를 채집하려다 눈속에 빠져 죽을 뻔한 적도 있었다. 그는 노래기 표본을 아파트 방 한 쪽에 보관하고 있지만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자연사 박물관을 세우면 기증할 생각이다.

林장학사는 "주변에서 전혀 눈길을 주지 않는 비인기 분야라 혼자 연구에 매달려 씨름하는 게 힘들었다" 며 "이번 논문이 노래기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연구 의욕을 자극했으면 좋겠다" 고 말했다.

전주=장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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