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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노고단 정상 10년 휴식 끝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7면

지난달 30일 오후. 지리산 서부능선 끝자락인 전남 구례군 산동면 좌사리 노고단(老姑壇)고개.

10m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짙은 안개를 뚫고 성삼재에서 2.5㎞를 걸어 올라온 50여명의 등산객들이 "야-호" 를 외쳐댄다.

하지만 이 고개 남쪽에 목책이 버티고 있어 더 이상의 산행은 불가능하다. '출입금지, 자연휴식년제 구간' 이라는 팻말이 앞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을 통과하면 노고단 정상(해발 1천5백7m)에 이를 수 있지만 1991년 1월부터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됐다.

1일 시험개방을 앞두고 10년 동안 출입이 금지된 노고단 정상을 중앙일보 취재팀이 미리 들어가 봤다.

노고단 정상까지의 완만한 탐방로(1.3㎞)는 너비 4~5m의 나무 계단으로 이어져 있다. 하지만 바닥에서 흙을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철쭉.진달래.병꽃 나무들이 2m 가까이 잘 자라 있었고 나무 계단 사이에 풀들이 삐죽삐죽 돋아있을 정도로 식생이 거의 완벽하게 회복됐기 때문이다.

3백m쯤 더 오르자 붉은색 꽃을 머리에 인 '이질풀' 이 인사를 한다. 자주색 옷을 입은 비비추도 안개 속에서 또렷하게 자태를 뽐낸다.

탐방로 중간지점인 헬기장 앞에는 1m를 웃자란 지리털이풀들이 널려있다. 정상이 가까워지자 원추리 군락지가 장관을 이뤘다. 정상 돌탑을 배경으로 바람에 흔들리는 원추리 무리가 노란색 물감을 바다에 풀어놓은 듯했다.

잎은 나물로, 뿌리는 약용으로 사용되는 원추리는 등산객과 채취꾼들의 등쌀에 거의 남아나지 못했었다. 그러나 10년 만에 군락지로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국립공원지리산 관리사무소 문광선(文光宣.35)씨는 "10년 전에는 야생화를 거의 찾아볼 수 없었는데 요즘엔 계절마다 새 꽃들이 피고 진다" 고 말했다.

5월에 진달래.철쭉.병꽃나무 꽃이 피기 시작해 7, 8월에는 이질풀.산오이풀.지리털이풀이 꽃망울을 터뜨리고 8, 9월에는 쑥부쟁이.구절초.꽃향유.물매화 등이 차례로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낸다는 것이다.

그러나 등산객들이 많이 몰렸던 야영지 부근은 아직까지 풀이 없는 곳이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한번 훼손된 자연의 회복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현장이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측은 휴식년 동안 유실된 지역에 돌.모래.흙 등을 채워주고 볏짚과 황마 그물을 덮어 토양 유실을 막았다.

훼손이 심한 곳에는 흙.풀씨.비료 등을 섞어 넣은 '식생(植生)자루' 를 쌓았다. 쑥.비수리.암고초.싸리 등 훼손지역에서 잘 자라는 식물 씨도 뿌렸다.

94년 노고단 주변에 1백16종(38과)에 불과하던 식생이 지금은 1백48종(40과)으로 늘어났다. 멧돼지.담비.오소리 등 야생동물들의 발자국도 자주 발견된다.

경상대 산림과학부 마호섭(麻鎬燮.47)교수는 "10년 동안 10억원의 예산을 들여 어렵게 복원된 노고단은 자연이 한번 훼손될 경우 회복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설명해 준다" 고 말했다.

지리산〓김상진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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