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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총리 야스쿠니 참배 이것이 문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일본 총리의 다음달 15일 야스쿠니(靖國)신사 공식참배 문제로 일본 국내는 물론 동북아가 시끌시끌하다.

한국.중국이 우호관계의 근간이 흔들릴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지만 고이즈미는 "참배한 후에나 얘기하자" 며 막무가내다.

일본 내에서도 찬반 논란이 한창이고, 국립묘지를 만들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전 총리의 1985년 공식참배 이후 다시 동북아시아 외교전선의 골칫덩이로 떠오른 야스쿠니 신사가 도대체 무엇이고, 총리의 공식참배가 왜 문제인지 파헤친다.

야스쿠니 신사 문제는 고이즈미 총리가 지난 4월 자민당 총재선거 직전 전몰자 유족회 사무실을 방문해 "총리가 되면 종전 기념일인 8월 15일 야스쿠니 신사를 공식 참배하겠다" 고 발언하면서 터져나왔다.

한국.중국의 거센 반발에 부닥친 고이즈미는 총리 당선 후 한때 '개인자격 참배' 로 후퇴하기도 했지만 곧 번복했고 지금도 공식참배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 고이즈미의 주장=고이즈미는 "일본 번영의 초석이 된 전몰자에게 참배하는 것은 당연하다" "더 이상 전쟁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서 참배한다" 고 주장하고 있다.

고이즈미의 참배 고집은 총리.참의원 선거의 득표전략이라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총리가 참배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해 왔다" 는 그의 발언을 볼 때 단순한 득표전략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장기 경기침체로 갈수록 우익화하는 일본의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라는 분석이 더욱 설득력을 지닌다.

◇ 무엇이 문제인가=한국.중국이 고이즈미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거세게 반대하는 것은 그곳이 일본제국주의 침략전쟁과 일본 극우세력을 상징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 신사는 일본이 근.현대에 벌인 각종 전쟁에서 숨진 전몰자 2백46만여명을 신격화해 제사를 지내고 있다.

특히 태평양전쟁 후 극동전범재판에서 A급 전범으로 판결받아 처형된 도조 히데키(東條英機)총리 겸 육군대신 등 14명이 이곳에 합사(合祀)돼 있다.

일제시대에는 "전쟁터에서 죽으면 이곳에서 신이 된다" 며 참전을 종용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야스쿠니는 '전쟁과 군신(軍神)의 신사' 로도 불린다. 지금도 신사 내에 전쟁박물관 유슈칸(遊就館)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 무료 배포하는 안내자료에는 과거 침략전쟁과 관련해 "일본의 독립과 평화를 지키고, 주변 아시아 국가와 함께 발전하기 위해 싸우지 않을 수 없었다" 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중국은 일본 총리가 이런 곳을 공식 참배하는 것은 일제 침략을 정당화하고 일본의 우경화를 부추길 수 있다고 본다.

일본 센다이(仙台)고등법원은 1991년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공식참배는 정치.종교의 분리를 명시한 헌법 20조에 위배된다' 는 판결을 내렸다. 일본 연립여당인 공명당의 간자키 다케노리(神崎武法)대표도 이런 이유로 공식참배에 반대한다.

◇ 갈등의 역사=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과거에도 여러번 있었다. 75년 8월과 78년 8월에 미키 다케오(三木武夫)와 후쿠다 다케오(福田赳夫)가 참배했다. 미키는 개인자격이라고 주장했고 후쿠다는 방명록에 총리라고 적었다.

하지만 이때는 A급 전범이 합사(78년 10월)되기 이전이어서 큰 마찰은 없었다. 그러나 나카소네 야스히로가 85년 8월 총리 자격으로 처음 공식 참배했을 때는 한국.중국이 거세게 반발해 나카소네는 다음해부터 참배를 중단했다.

도쿄=오대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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