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한·미 FTA, 오바마 대통령의 결심에 달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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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낙관해도 되는 건가. 이명박 대통령이 방미(訪美) 기간 중 미 정부에 한·미 FTA의 조기 비준(批准)을 재차 강력히 촉구했고, 미국 측 반응도 긍정적이라 다소 헷갈리는 게 사실이다. 조셉 바이든 미국 부통령은 “오바마 대통령과 미 행정부는 한국과의 FTA를 진전시킬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미국 정부와 의회 주변에선 여전히 한·미 FTA의 조기 비준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관측이 많다. 건강보험 개혁법안을 통과시키느라 정치력을 소진한 오바마 정부가 곧바로 한·미 FTA에 대한 의회의 지지를 끌어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에서다. 미국 의회, 특히 여당인 민주당에는 FTA 확산에 반대하는 보호무역주의적 성향의 의원들이 적지 않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오바마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운 FTA 비준을 적극적으로 밀어붙이기는 어려울 것이란 얘기다.

다른 한편에선 미국의 국익(國益)을 위해선 한국은 물론, 콜롬비아·파나마와의 FTA를 빠른 시일 내에 비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토머스 도너휴 미 상공회의소회장은 올해 초 “(미국이) 경기침체를 극복하고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향후 5년간 수출을 두 배로 늘려야 한다”며 “이를 위해 한국 등 3개국과의 FTA 비준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윌리엄 로즈 씨티그룹 부회장은 지난 2월 월스트리트 저널 기고에서 “아시아에서 미국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수출증진으로 고용을 창출하기 위해 오바마 대통령과 미 의회가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조치는 한·미 FTA를 조속히 이행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론 커크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도 최근 “수출 주도에 의한 일자리 창출에 한국 등 3개국과의 FTA 비준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도너휴 회장의 주장대로 앞으로 5년간 수출을 두 배로 늘리겠다고 거듭 공언해 왔다. 그러나 FTA 비준에 대해서는 아직 확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이 한·미 FTA를 조기 비준해야 할 새로운 필요성을 제시했다. 이 대통령은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한·미 FTA는 단순한 경제협정이 아니라 오바마 행정부의 신아시아정책에 중대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다. 아시아에서 빠르게 군사·경제적 영향력을 키우고 있는 중국을 감안할 때 한국과의 FTA야말로 미국이 아시아에서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는 전략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의 칼럼니스트 앨버트 헌트도 똑같은 이유로 한·미 FTA의 비준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결국 한·미 FTA의 운명은 오바마 대통령의 결심에 달려 있다. 눈앞의 정치적 부담 때문에 미국의 국익을 방치할 것인지, 아니면 역경을 뚫고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성사시킨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처럼 용기를 발휘할 수 있을지, 오바마 대통령의 선택이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