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우려되는 부동산 투기조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요즈음 부동산시장이 심상치 않다. 지난해 가을 이후 들먹거린 전셋값이 급등세를 멈추지 않고 이제 집값에까지 옮겨붙는 이상과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아직 전국적인 현상은 아니며 한편에선 건설경기가 여전히 불투명하다지만 우려할 일임에는 분명하다.

최근의 부동산시장 불안은 우리 주택시장의 구조적 취약성에 기인하지만 정부의 정책 실패 탓도 크다. 기본적으로는 연간 주택 공급 물량이 30만~40만가구로 외환 위기 전보다 10만여가구가 줄어든 데다 정부가 1998년 소형 주택 건설 의무 비율을 폐지해 건설업체들이 수익이 좋은 중대형 아파트 건설에 몰두하면서 소형 아파트의 전셋값이 폭등했다.

여기에 무분별한 재건축 붐으로 인한 전세 수요 급증이 가세하고, 최근에는 저금리 체제의 장기화로 시중 자금이 부동산시장에 쏠리면서 투기 우려를 낳고 있는 것이다.

물론 부동산 경기의 회복을 이상한 시각으로만 볼 이유는 없다. 적절한 부동산시장의 활황은 주택 건설을 촉진해 실수요자들의 내집 마련 기회를 넓혀주고 전체 경기 회복에도 기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반적인 경기 침체의 한가운데에서, 그것도 비수기에 벌어지고 있는 현재의 부동산 이상 과열 현상은 거품으로 이어질 공산이 농후하다.

부동산 투기가 한번 일어나면 이를 진정시킬 단기 처방이란 여간해 찾기 어렵지만 그렇다고 정부가 손을 놓아선 곤란하다. 전셋값 급등을 막기 위해선 특히 서울의 경우 재건축 수요를 분산하고 임대주택 건설을 대폭 확대해나가야 한다.

아파트값 상승을 저지하기 위해 적절한 분양가를 유도하는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98년 분양가 자율화 조치 이후 불과 3년 만에 서울의 아파트 분양가가 평균 40% 올랐다는 것은 비정상적인 가격 결정 요소가 많음을 방증해 준다.

이 시점에서 가장 경계할 일은 건설 경기를 부추겨 경기를 부양해 보자는 유혹이다. 정부는 이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부동산 가격이 외환 위기 이전으로 되돌아간 판에 재차 투기가 불붙으면 우리 경제의 족쇄인 '고비용 저효율' 에서의 탈출은 정말 물 건너갈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