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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부즈맨 칼럼] 1면 연속성·집중화 높이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최근 정부가 일하는 행태를 보면 국민에게 참을 수 없을 정도의 인내심을 요구하고 있는 것 같다.

어느 하나 사전 준비하는 게 없고 일이 터지고 나서야 뒤늦게 허둥대기 때문이다.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에 대한 대응이 그렇고, 언론사 세무조사로 유발된 국론 및 국민 분열에 대한 대응이 그렇고, 중국 베이징의 올림픽 유치에 따른 대응도 그렇고, 이제는 연례행사가 돼 버린 가뭄이나 집중호우에 대비한 재해대책도 그렇다.

정치.경제.외교.사회부문에 걸쳐 어느 것 하나 미리 준비하는 법이 없다. 그러다 보니 신문보도도 연일 터져나오는 문제점들과 사건 사고를 바쁘게 다루고, 정부의 뒷북 행정을 질타하기에 바쁘다.

사정이 이러니 국민 모두가 현재의 우리 모습을 차분히 돌아보며 무엇이 잘못됐고, 어떻게 바로잡아야 하는지를 생각해 볼 겨를이 없다. 태평양 건너에서 간간이 들려오는 박찬호의 쾌투 소식에 우리의 짜증을 던져버리고, 박세리의 호쾌한 샷에 근심을 날리며 잠시 위안을 찾을 수 있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이럴 때일수록 신문은 보다 냉정하고 진지할 필요가 있다. 좀더 거시적인 안목에서 우리나라가 가고 있는 길이 과연 올바른 것인지 성찰하면서 국민과 정부에 방향을 잡아주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의제를 일관성 있게 제시하는 것이 선결 과제다. 개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문제점과 사건 사고들이지만 거기에 상호 연계성은 없는지, 이런 문제들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인지를 파헤치고 올바른 방향을 모색해봐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지난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1면 기사들을 보면 특정 의제를 제시하고 사회적 쟁점으로 승화시켜 국민적 관심사로 계속 논의토록 하는 기사의 연속성과 집중화가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든다.

1면 머리기사를 보면 기습호우 피해(16일)에서부터 국민 1인당 너무 많은 이자부담률(17일), 남한상공 항로 레이더 시험 이상(18일), 미군기지 반환(19일), 헌재의 현행 전국구 의석배분 위헌 결정(20일), 그리고 수능시험 개편방안(21일) 등 주제가 매일 바뀌었다.

그만큼 다양한 의제와 문제들이 속출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1면 머리기사가 연속성이 없으므로 어느 주제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얼마나 더 심각한 상황인지 독자들은 분간하기가 어렵다.

예컨대 16일과 18일자의 머리기사가 정부 당국의 극에 달한 안전불감증과 관련된 기사라면 상호 연계 속에 지속적으로 공론화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항공 레이더 시험 이상 관련 기사는 기획취재인데 단 하루만 취급하고 말아 중요한 사안인데도 우리의 뇌리에서 금세 사라질 수 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한편 이번 기습폭우와 당국의 무사안일 대응에 의한 피해 중 가장 쇼킹한 것은 감전사였다. 따라서 중앙일보에서는 16일부터 연일 이 문제를 집중 거론, 사안의 심각성을 잘 부각했다(16일 27면 '폭우로 가로등 누전 15명 길거리 감전사' , 17일 27면 '감전사.주택침수 인재 부실수방 줄소송 대기' , 18일 31면 '가로등 누전 시정요구 지자체서 묵살해와' , 19일 30면 '폭우 때 연쇄 감전사 가로등 구청, 세차례 경고 묵살' , 20일 30면 '가로등 감전사 네탓이오 시.구.감사원.산자부 공방' , 21일 30면 '신호등도 감전 위험' ).

특히 의미 있었던 것은 감전사 문제를 매일 집중적으로 게재함으로써 이를 국민적 쟁점으로 이끌었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국가적 의제로 연일 부각한 만큼 경우에 따라서는 이 문제를 과감히 1면에 배치해 독자에게 사안의 중요성을 보다 심각하게 인식시킬 필요가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朴 天 一 (숙명여대 교수 언론정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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