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이 많은 칼, 다 어디에 쓸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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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2면

글=서정민 기자,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사진협조=헹켈

1 전형적인 유럽형 식도. 20cm. 칼등은 거의 직선이고 날은 뾰족하게 정면을 향한다.
2 톱니과도. 13cm. 이런 칼날은 단단한 빵과 과일, 말랑한 토마토와 치즈 등을 자르는 데 좋다.
3 중도. 16cm . 채소를 다듬고 과일을 자를 때 유용하다.
4 단단하고 큰 빵을 쉽게 자를 수 있도록 톱니 모양의 칼날을 가진 빵칼. 20cm
5 산토쿠 칼. 18cm 안팎. 칼날과 칼자루를 잇는 볼스터(손가락 보호대)가 없다.
6 중국 칼. 일반 가정이나 전문 요리사 모두 이 칼을 애용한다.
7 과도. 주방용 식도 중 가장 작다. 10cm.

기본은 3개, 용도 따라 추가를

‘일반 식도 한 개, 과일용 나이프 한 개, 빵칼 1개’.

전문가들은 가정용 식도는 이 세 가지가 기본이라고 꼽는다. 식도와 과일용 나이프가 기본용품이라면 칼날이 톱니처럼 생긴 빵칼은 전문용 칼이다. 빵칼은 의외로 쓰임새가 많다. 토마토처럼 겉은 단단하고 속은 말랑한 재료를 흐트러짐 없이 잘라주고, 치즈와 햄을 자르는 데도 빵칼 하나면 깔끔하게 해결된다. 샐러드와 빵으로 아침 식사를 해결하는 가정에선 가장 유용한 칼이 바로 빵칼이다. 헹켈 숍매니저인 황애정씨는 “빵칼은 사이즈가 작은 것이 좋다”고 추천했다. 일반 과도로는 미끄러워 깎기 힘든 키위 껍질도 쉽게 깎을 수 있고, 보관하기도 쉽기 때문이라는 것.

이 기본 구색에다 가족의 식생활 특성에 따라 추가하면 된다. 가족 수가 많거나 요리를 자주 하는 주부라면 식도보다 크기가 20~30% 정도 작은 중도 한 개가 더 있으면 좋다. 채소를 다듬거나 수박처럼 큰 과일을 자르는 데 유용하다. 햄·치즈·푸딩과 같은 서양 음식을 즐긴다면 칼날에 물결 무늬가 있거나 구멍이 뚫린 것이 좋다. 두 가지 디자인 모두 재료가 날에 잘 붙지 않는다. 생선 요리를 자주 한다면 날이 길고 얇은 사시미용 칼이 좋다.

식도는 ‘산토쿠 칼’이 대세

최근 부엌칼의 형태는 ‘산토쿠 스타일’이 점령했다. 산토쿠(三德)는 ‘칼 한 자루로 채소·고기·생선을 모두 다룬다’는 복합기능형 칼이다. 일본에서 처음 나온 이 칼은 칼끝이 부드러운 ㄱ자 형태로 꺾여 있고, 손잡이쪽 칼날이 직각으로 디자인돼 있고 가벼운 것이 특징이다. 지금은 이런 디자인의 칼을 통칭해서 산토쿠라고 부른다.

롯데백화점 홍두호 주방용품MD는 “서양 칼의 뾰족한 칼끝이 위험해서 꺼리는 주부들이 식도를 고를 때 산토쿠 스타일을 선호한다”며 “아시아 여성에게 유리한 디자인이어서 일부에서는 ‘아시아형’ 칼로 부른다”고도 했다. 일본 칼 브랜드 카이의 숍매니저 김경순씨는 “칼날이 얇아서 생선을 다듬기 좋고, 칼날 전체가 볼록 렌즈처럼 유선형 각도로 돼 있어 야채를 다지고 채를 썰 때 잘 붙지 않는다. 완만한 포물선을 그리는 칼날 앞쪽은 찌르는 기능은 약하지만 날이 예리해서 고기를 손질할 때 좋다”고 말했다.

둥글고 네모나고 길쭉한 한·중·일 ‘부엌칼 삼국지’

한국·중국·일본 등 삼국은 예로부터 외견상으로도 확연히 구분되는 부엌칼이 있었다. 식생활의 차이가 칼의 차이를 만들었다. 삼국 칼의 족보와 사용법을 알아본다.

1 버선 모양의 한국 부엌칼

한국의 부엌칼은 칼날이 유난히 둥글다. 칼등 끝도 아래로 살짝 휘었다. 칼끝부터 내려오는 완만한 곡선은 버선처럼 생겼다. 칼끝은 살짝 아래로 고개를 숙인 느낌이다. 북촌생활사박물관 이경애(56) 관장은 “살상용 무기이기도 한 위험한 칼을 옛날 장인들이 부드러운 형태로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두툼한 칼등은 생선 비늘을 긁거나 고기를 다질 때 유용하다. 칼날 뒤끝은 단단한 고기 심줄을 자르고, 손잡이는 마늘을 다질 때 좋다. 둥근 칼날은 삼등분해 날카로운 앞쪽은 고기를 저밀 때, 가운데는 단단한 채소를 채 썰 때, 뒤쪽은 채소 잎을 지그시 눌러 자를 때 사용하면 좋다. 부엌에선 서양 칼에 밀려나고 있지만 아직도 재래시장과 인터넷을 통하면 대장간에서 만든 부엌칼을 살 수 있다. 가격은 3000원부터 다양하다.

2 넙적하고 네모난 중국 칼

중국의 부엌칼은 벽돌의 단면처럼 직사각형이다. 칼날의 면도 한국, 일본 것의 두 배만큼 넓다. 신라호텔 중식당 팔선의 왕재호(39) 셰프는 “중식은 이 칼 하나로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말했다. 이유는 “날것으로 먹는 요리가 없기 때문”이다. 일본은 생선을 날로 먹기 때문에 생선을 자른 칼로 채소를 자르면 냄새가 밴다. 그래서 칼을 반드시 분리해 사용하지만 중식은 재료를 자른 후 바로 튀기거나 찌고 볶기 때문에 냄새 걱정이 없다. 왕 셰프는 “칼등은 무겁고 두꺼워 육류의 뼈를 자르거나 고기를 다지고, 날카로운 앞부분은 생선을 바르고, 넓은 날의 중앙 부분은 채소를 끊어 치고, 끝 부분은 밀어 썰기에 용이하다”고 사용법을 알려줬다. 중국 칼의 평균 가격은 7만~8만원 정도.

3 재료에 따라 달리 쓰는 일본 칼

일본은 음식재료에 따라 칼의 종류가 명확히 나뉜다. 생선살을 뜨는 ‘사시미 칼’은 길이가 길고 칼날 폭도 얇다. 눕혀서 사용하기 때문에 한쪽 날에만 각도가 있다. ‘우수바’는 채소를 다듬거나 자를 때 사용한다. 사시미 칼보다 길이가 짧고, 모양은 사각형이다. ‘데바’는 생선을 큼직하게 자를 때나 아주 얇게 포를 뜰 때 사용한다. 모양은 어른 손바닥만 한 작은 이등변 삼각형이다. 일본의 부엌칼은 인터넷 쇼핑몰에서 쉽게 살 수 있다. 크기와 사이즈, 용도별로 나뉘어 제품이 구비돼 있다.

드라마 대장금에 나온 ‘남원칼’ 만들었죠
3대째 대장간 이어온 ‘은성식도’ 박판두 대표

한국의 전통 부엌칼이 항간의 관심거리로 떠오른 적이 있었다. 2004년 방영된 드라마 ‘대장금’이다. 당시 한 상궁(양미경 분)이 날렵하게 재료를 썰어내던 칼이 남원칼이다. 예부터 남원은 칼로 유명했다. 그래서 이 지역에서 제조되는 칼에는 대부분 ‘남원(南原)’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그중에서도 한 상궁의 칼은 3대째 대장간을 해오고 있는 은성식도 박판두(64·사진) 대표가 만든 칼이다. 남원에 있는 박씨의 대장간은 20㎡ 남짓이었다. 이 좁은 공간에 작은 화덕을 두고 하루 종일 칼을 만들고 있다.

부엌칼 만드는 과정은 기차 레일용 쇳덩어리를 두드려 납작하게 만드는 것부터 시작된다. 이것을 예리한 작두로 오린다. 박씨의 작두질 몇 번에 얇은 쇠는 순식간에 버선코 모양으로 오려진다. 미리 피워둔 화덕에 이것을 달구었다가 망치로 두드린다. 철의 잡성분을 떨어내면서 반듯하게 모양을 잡는 ‘다디미질’ 과정이다. 이것이 끝나면 쇠로 된 연마석에 칼을 간다. 그리고 ‘담금질’을 시작한다. 석탄 불에 넣어 빨갛게 달아오른 칼을 차가운 물에 잠깐 식힌 다음 두드리면서 철이 더 단단해지도록 하는 과정이다.

박씨는 “칼은 알맞은 정도의 담금질이 제일 중요하다”며 “너무 세면 날이 빠지고 약하면 날이 오그라든다”고 말했다. 담금질이 끝나면 또 한번 연마를 한다. 날이 반듯하고 예리해질 때까지 박씨가 연마에 정성을 들이는 시간은 10여 분. “예전엔 숫돌로 했는데 지금은 모터 기계가 있으니 훨씬 쉬워졌어요.” 몇 달 전에는 광주박물관에서 박씨 아버지가 사용했던 숫돌을 기증하라고 왔었단다. “하나밖에 안 남은 거라 일단은 못 드렸어요.” 박씨가 돌 한쪽이 평평하고 반질반질하게 닳은 숫돌을 보여주었다. 박씨는 그의 일을 돕는 사람까지 두 사람이 온종일 매달려 하루에 칼 50자루를 만든다고 했다. 칼 한 자루 가격은 보통 6000~1만원 정도. 박씨의 칼에는 ‘남원’ 밑에 ‘박(朴)’자 하나가 더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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