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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 종식 선언 16일 만에 또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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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정부가 구제역 종식을 선언한 지 16일 만에 구제역에 감염된 소가 또 나왔다. 구제역 의심 증세를 보여 8일 신고된 인천시 강화군 선원면의 한우가 9일 구제역에 감염된 것으로 확진됐다. 인근의 농장 두 곳에서도 구제역 의심 신고가 접수됐다.

농림수산식품부 이창범 축산정책관은 9일 “국립수의과학검역원 정밀검사 결과 구제역으로 판명돼 긴급 방역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가축방역협의회를 하고 발생 농장의 한우 169마리를 폐사(살처분)시켰다. 발생 농가 500m 안에 있는 13개 농가가 기르고 있던 2400여 마리의 소도 10일 오전까지 살처분할 예정이다. 정부는 또 주변 반경 3㎞까지를 위험지역으로, 3∼10㎞는 경계지역, 10∼20㎞는 관리지역으로 지정하고 방제조치를 취하고 있다. 경계지역 안팎으로는 가축과 사람, 차량의 이동이 통제된다.

이번에 발생한 구제역은 ‘O형’ 혈청으로 올 1월 포천에서 발생했던 구제역(A형)과는 다르다. 혈청형은 바이러스의 유형을 가리키는 것으로, 포천의 구제역과 강화의 구제역은 ‘출신 성분’이 달라 새로운 감염 경로를 통해 전파됐다는 뜻이다. 정부는 농장주 이모씨가 지난달 8∼13일 중국 장자제(張家界)로 여행을 다녀온 데다 평소 중국산 사료를 수입해 왔다는 점을 감안해 그가 바이러스를 옮겼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익명을 원한 농식품부 관계자는 “정확한 감염 경로는 역학조사가 마무리돼야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에는 발생지역으로부터 1.4㎞ 떨어져 있는 한우 농가(90마리)와 3.5㎞ 떨어져 있는 불은면의 돼지 농가(1500마리)에서도 구제역 의심 증상이 신고됐다. 특히 불은면의 농가는 위험지역(3㎞) 밖에 있어 구제역 확진 시 피해가 확산할 가능성이 크다. 돼지의 바이러스 전염률은 소의 3000배 이상이다. 이 때문에 돼지의 감염이 확인될 경우 발생지로부터 500m 이내인 살처분 대상과 통제 지역을 넓혀야 할 가능성도 있다. 정부는 일단 강화대교와 초지대교 등 모두 12곳에 이동 통제소를 설치했다.

전국 축산농가의 피해는 다시 커질 전망이다. 지난달 구제역 종식선언과 함께 문을 열었던 전국의 모든 가축시장은 이날 제주도를 제외하고는 다시 폐쇄됐다. 돼지고기 수출도 난항을 겪게 됐다. 한국은 간 등 돼지 부속물을 필리핀과 태국 등 동남아 국가에 공급해 왔다. 2008년 1만405t(1771만6000달러), 지난해 1만2554t(1165만3000달러)의 수출이 이뤄졌지만 올 초 구제역 탓에 중단됐다.

농식품부는 구제역 종식을 선언한 뒤 해외 바이어를 초청하는 등 수출 재개를 추진해 왔다. 하지만 이번에 구제역이 재발하면서 수출은 다시 발이 묶이게 됐다. 지난해 9월 제주도산 돼지고기의 일본 수출이 시범적으로 시작됐으나 이 역시 좌초됐다.  

연달아 구제역이 발생하면서 국내 가축 방역망의 안전성도 의심받게 됐다. ‘구제역 빈발국’이 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후진국형 질병인 구제역이 반복되면 국가 이미지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정부의 대응이 안일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건국대 류영수(수의학) 교수는 “통상 2월부터 5월 초까지는 황사 등 구제역 감염 요인이 많은 시기임에도 사전 예방에 소홀했다”며 “꾸준한 소독을 벌이는 한편 농민이 구제역 상시 대비 태세를 갖추도록 캠페인과 교육을 이어 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기환·권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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