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고객불만족'을 위하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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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소비자 이익의 극대화가 기업경영의 주된 목표가 된 지는 오래다. 고객만족 경영이란 말이 생겨난 것도 다 같은 차원이다.

미국의 경우 기업과 소비자간에 약간의 분쟁이라도 생기면 웬만하면 소비자가 이긴다. 약 한달 전 미국 로스앤젤레스 지방법원의 배심원단은 담배회사 필립모리스에 대해 한 폐암환자(56세)에게 약 4조원을 배상하라고 평결했다.

이 환자는 13세부터 40년간 담배를 피우다 2년 전 폐암진단을 받고 소송을 냈었다. 담배가 나쁘다는 건 상식이고 누가 강요해 담배를 피운 것도 아닐 텐데 어떻게 이런 천문학적인 배상 평결이 내려질 수 있는지 의아스러울 정도다. '소비자는 항상 옳다' 는 미국 사회의 의식구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우리는 아직도 거꾸로 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고객들에게 너무 많은 만족을 주지 말라고 정부가 기업에 요구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소비자들에게 비싼 경품을 주지 말라고 규제하는 것이 그런 예다.

고객들에게 비싼 선물을 줄지, 대충 생색만 내는 걸로 할지는 기업들이 알아서 할 일이다. 그런데도 얼마짜리 선물은 되고, 얼마 이상은 안된다고 정부가 규제하는 것은 난센스다.

이런 억지논리를 조금만 확대하면 기업들은 정부가 정해주는 범위 내에서만 판촉비를 써야 한다는 얘기로 이어진다. 이 세상에 지나친 경쟁이란 없다. 마찬가지로 지나친 고객만족도 없다. 경쟁은 심할수록, 고객만족은 클수록 좋은 것이다.

대형 유통업체들의 셔틀버스 운행을 금지시킨 일이야말로 '소비자 불만족 경영' 의 극치다. 정부는 재래시장 및 영세상인들과 버스회사들의 이익 보호를 위해 셔틀버스를 금지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들 누구도 이번 조치로 별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다. 동네가게의 장사가 잘 될 줄 알았으나 '아니올시다' 라는 얘기다. 사람들이 이미 대형 매장들의 장점을 너무 많이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라면 한박스가 몇백원은 쌀 정도로 할인점들의 가격경쟁력은 우수하다.

다양한 상품을 구비한 널찍한 매장에 은은한 음악, 환불규정 등 쇼핑환경도 아파트 상가들과는 비교가 안된다.

버스업자들의 기대도 빗나가고 말았다. 물건을 잔뜩 사들고 버스를 탈 정도로 인내심 있는 사람들은 정부의 예상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주부들끼리 카풀을 하든지, 남편이 귀가한 뒤 한밤중에 가족단위로 쇼핑에 나서는 경우가 늘었다고 한다. 어떤 경우든 자가용을 거리로 더 끌어낼 뿐이다.

조직화된 버스업자들의 등쌀에 밀려 이런 정책을 취했지만 길만 막히니 버스회사들은 기름값 낭비만 심해졌는지도 모르겠다. 참으로 역설적이게도 규제의 대상이 된 당사자들만 덕을 보게 생겼다. 셔틀버스 운행을 않고도 매출에 별 타격이 없기 때문이다. 정책의도와는 정반대 되는 결과가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요즘 일본의 편의점들이 어떻게 장사하고 있는지 한번 보자. 이들은 일찍이 간단한 생필품만 팔아서는 어렵다고 판단하곤 쉼 없는 변신을 시도했다. 그 결과 지금은 별의별 일을 다 한다. 사진현상.팩스서비스 등은 기본이며 택배접수가 주수입원이 됐다.

영화표를 팔고 동사무소의 민원서류도 떼어다 준다. 전기.수도요금 등 공공요금도 받아준다. 은행은 영업시간에만 받지만 이곳은 24시간 문을 열기 때문에 고객입장에선 훨씬 편리하다.

일본에 편의점이 처음 등장했을 때 구멍가게들만이 싫어했다. 그러나 이제는 많은 업자들이 싫어한단다. 언제 자신의 영역을 침범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버스업자들처럼 셔틀버스 운행을 막는 '쾌거' 를 올렸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극소수의 찬성과 대다수의 반대 속에 셔틀버스가 멈춘 지 열흘이 지났다. 결론은 이미 났다. 잘못된 정책으로 판명된 것이다. 누구나 잘못을 할 수 있다. 잘못됨을 알았으면 바로 고쳐야 한다. 셔틀버스는 다시 운행돼야 한다.

심상복 국제경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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