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교류 상징’ 12년 만에 파국 위기 … 새 사업자는 중국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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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명승지종합개발지도국이 8일 한국관광공사 소유의 회관과 온천·면세점·이산가족 면회소를 동결하고 금강산 관광을 새 사업자와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은 2009년 8월 촬영한 금강산 지구 내 호텔·식당·면세점이 있는 온정각 일대 모습. [연합뉴스]

1998년 11월 시작돼 남북 교류의 상징으로 자리매김돼온 금강산 관광사업이 12년 만에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됐다. 북한이 8일 금강산 지역 내 남한 소유 부동산의 동결은 물론 현지에 머물러온 남측 관리 인원을 추방하겠다고 한 데다 새로운 사업자와의 관광 개시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8일 현재 금강산에 체류 중인 우리 국민은 35명이다. 현재의 남북 경색 국면에 미뤄볼 때 북한이 밝힌 새 사업자는 남한이 아닌 중국 등 제3국 업체가 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남측 기업 소유 자산 동결은 어느 정도 예견됐다. 올 들어 열린 금강산 관광 당국 회담에 성과가 없자 북한은 불만을 보여왔다. 지난달 말에는 현지에 부동산을 둔 우리 기업 관계자들을 불러모아 실사를 하면서 “불참 시 몰수하겠다”는 위협을 했다. 또 현대와의 관광 계약 파기와 ‘새로운 사업자’와의 관광사업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8일 발표에서 우리 정부 소유의 이산가족면회소까지 동결 대상에 넣어버림으로써 이번 사태가 단순히 관광사업 문제에 그치지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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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에 머물러온 남측 관리 인원까지 추방하겠다고 밝힘으로써 앞으로 금강산 지역의 부동산 유지·보수나 남북 사업자 간의 채널도 사실상 단절될 상황을 맞았다. 2008년 7월 우리 관광객 박왕자씨의 피격 사망 사건 이후 관광사업은 중단됐지만 현대아산 등 직원들은 현지에 머물러왔다. 2008년 초 이명박 정부 출범 당시 대북 정책에 대한 불만 표시로 북한이 개성공단에 머물던 남측 당국자를 추방하는 등 긴장을 조성해온 상황이 금강산에서 재연된 것이다. 북한은 이번 조치에 따라 관광 계약 파기 등의 수순을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중국 등 해외 관광객의 수요가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돼 북한 주민들을 동원한 관광이 이뤄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게 우리 정부 당국의 분석이다.

개성공단의 폐쇄 가능성을 내비친 대목도 주목된다. 금강산 관광사업에 이은 2단계 조치를 예고하면서 남측의 태도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으로 해석된다. 정부는 북한의 발표 직후 낸 보도자료에서 “북한의 조치는 철회돼야 하며, 모든 책임은 북한에 있다”고 밝혔다. 북한의 밀어붙이기식 관광 재개 압박에 굴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다.

정부는 북한의 강경 입장 표명이 천안함 침몰 사태와 관련이 있는지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북한의 발표는 천안함이 침몰한 지 꼭 2주 만에 나왔다. 그동안 침몰 상황에 대한 아무런 언급 없이 대남 비난도 자제하는 등 남측의 분위기를 살펴온 북한이 초강경수를 던진 것이다. 북한 성명이 “우리의 존엄을 모독하는 험담이 난무하고 체제 대결이 위험 계선을 넘어섰다”며 “(남측의) 반공화국 모략책동을 결코 용납 않을 것”이라고 말한 점은 특히 주목된다. 정부 관계자는 “천안함 사태에 북한이 관련돼 있을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는 등 최근의 분위기에 대해 북한이 내부 입장 정리를 마친 듯하다”고 말했다. 정부 일각에서는 북한의 이번 입장 표명이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차원을 넘어 남북관계 전반에 파장을 미칠지 모른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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