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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고] "갈등·분열 몰아낼 국민적 합의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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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우리 사회가 어디서부터인가 부서지는 파열음이 날로 높아가고 있다. 국민적 합의나 단합보다는 파편화의 징조가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당면한 국내외의 어려운 국가적 과제를 생각할 때 국민들은 단순한 걱정의 수준을 넘어 심각한 불안에 휩쓸리고 있다.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비분강개하는 감정의 폭발은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왜 우리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를 냉철하게 분석하고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하고 적절한 처방을 모색하는 것이 시급하다.

그리하여 우리 대한민국이 보다 순탄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광범위한 분야에서 그 기초가 되는 사회계약의 틀을 새로이 마련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왜 지금과 같은 파편화를 경험하게 되었는가. 역사의 전환기에는 개인과 집단의 관계, 개인과 국가의 관계, 그리고 개인 상호간의 관계를 묶어주는 일체감, 의무감, 공동체 의식이 흔들릴 수밖에 없으며 그로 인한 공백을 제때에 메우지 못하면 분열과 혼란이 일어난다는 사회변화의 일반원칙에서 우리 사회만이 예외일 수는 없다.

역사의 한 시기가 끝나고 다음 시기로 넘어가는 전환기를 우리는 지난 10년간에 적어도 세 가지 다른 차원에서 경험했다.

첫째로 냉전의 종식이 가져온 이른바 탈냉전기로의 전환, 둘째로 근대화란 기치 아래 추진된 산업화의 성공에 뒤따르는 전환, 셋째로 민주화를 위한 투쟁과 노력이 일단 결실을 본 후에 뒤따르는 전환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세 차원에서의 전환기적 공백과 진통에 대해 우리는 결정적 한계를 노출했으며 그로 인한 사회분열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며 독일 통일이 이루어지고 뒤이어 동유럽국가들의 자유화와 소련의 해체로 반세기 가까이 진행되던 동서냉전은 일단 막을 내렸다. 그러나 분단과 대결이 지속된 한반도만은 예외지역으로 남게 되었으며 이러한 역사적 전환기에 걸맞은 새로운 비전과 정책을 제시하고 국민적 합의를 조성하는 데 우리는 성공하지 못했다.

60년대에 시작한 산업화를 통한 근대화정책은 한 세대에 걸친 전국민의 노력과 희생의 결과로 큰 성과를 거두었다. 95년에 이르러 마침내 1인당 소득 1만달러, 연 수출 1천억달러의 고지에 오르며 이른바 선진국의 클럽이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함으로써 근대화의 성공을 확인했다.

그러나 제조업과 수출에 의존한 산업화시기를 지나 우리 경제를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발전시켜 나갈까에 대한 확실한 방침을 세우지 못한 채 97년의 외환위기란 수렁에 빠져버렸다. 금융시장의 세계화가 경제의 흐름을 좌우하는 새 시기에 대응하는 준비가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한편 건국 이래 꾸준히 이어온 민주화운동과 투쟁은 87년 6월항쟁이 6.29선언을 이끌어내면서 일단 성공의 시발점을 마련했고 그로부터 10년 후인 97년 선거에서 야당후보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킴으로써 대단원의 막을 내린 듯이 보였다.

그러나 권위주의 시기를 넘어선 후에 이 나라를 어떻게 경영할 것인가에 대한 국민적 합의나 비전은 전혀 준비하지 못했었다는 것을 우리는 오늘날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새로운 국제 경쟁의 시대에 진입하면서도 공산당을 규탄하고, 수출을 장려하며, 민주화 투쟁의 대상을 물색하는 습관화된 행동양식에만 안주한다면 우리는 전환기적 공백과 혼란에 휩쓸리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곧 새 시대로 향한 비전의 부재와 파산을 노출하는 것이다. 그러한 공백은 정치의 발전보다는 퇴화를 불러오고, 국민적 허전함을 메우는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원시적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퇴화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손쉬운 위기탈출의 묘안을 모색하기보다 오히려 사리의 기본으로 돌아가 우리의 나아갈 길을 찾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오늘의 파편화현상이 국민적 합의의 부재에서 비롯됐다면 새 시대에 맞는 국민적 합의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에 위기극복의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곧 새로운 한국적 사회계약의 필요를 뜻하는 것이다.

정치의 발전이나 퇴화는 국민의 선택에 달린 것이다. 불과 17개월 후로 다가온 대통령선거를 새로운 국민적 약속, 즉 사회계약의 계기로 활용하도록 국민의 뜻을 모아야 할 시점이다. 그러한 약속이 있을 때만이 밖으로부터 주어진 것이 아닌 우리 스스로가 선택하고 지켜야 할 공동체의 규범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우리의 사회계약에는 어떠한 내용이 포함돼야 할 것인가. 예를 들면, 우선 우리 스스로를 망국적 지역감정으로부터 해방시키는 데 총력을 기울이자는 약속을 각 개인과 자기양심, 그리고 개인과 이웃, 개인과 집단, 개인 및 집단과 민족공동체 사이에 이루어야 한다.

세계 속의 한민족의 위치를 어떻게 적극적으로 고양하느냐는 세계화 및 개방화 전략에도 국민적 합의가 밑받침돼야 한다. 자유를 지키면서도 통일된 민족공동체 건설을 착실히 진전시키기 위한 노력 역시 국민 모두 함께 다짐해야 된다.

이렇게 예시하는 사회계약의 내용은 자유로운 국민적 토론과 논의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며 어떠한 교조적 처방에 의존할 수 없다. 민주국가에서의 선거는 바로 그러한 국민적 토론의 계기를 마련해주며 우리도 이런 기회를 기꺼이 활용해 당면한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언론자유와 납세의무의 관계를 놓고 심각한 국민여론의 분열과 그에 따른 정치적 갈등을 경험하고 있다. 언론자유나 납세의무의 법적.도덕적 타당성에 대하여는 아무런 논란이 없다.

그러나 언론자유의 중요성이 납세의무로부터의 자유로 연계될 수 없다는 입장과 납세의무의 강조가 언론자유를 위축시키는 결과로 이어져서는 안된다는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이러한 자유와 의무 사이에 존재하는 내재적 긴장관계를 어떻게 균형있게 관리하느냐에 대한 사회계약의 부재가 오늘날과 같은 심각한 논란과 갈등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한편 입법.사법.행정 3부간에는 삼권분립의 원칙과 절차가 헌법으로 규정돼 있는데 비해 이른바 '제4의 권부' 라는 언론과의 적절한 관계는 사회계약적 관행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7년 전 6.3동지회 30주년을 기념하는 모임에서 '민족공동체 건설과 사회계약' 이란 제목으로 연설하면서 나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제시한 바 있었다.

"보편성 있는 자유의 한국적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사회협약을 통해 결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떠한 자유는 어느 정도 향유될 수 있고 어떤 자유는 어느 정도 제한될 수 있는 것인가, 이것은 우리의 자유로운 사회협약을 통해서만 결정될 수 있는 것입니다. "

이홍구 <중앙일보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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