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일정부의 무성의와 무경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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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역사교과서 왜곡과 관련한 일본 내 최근 움직임과 남쿠릴 열도 주변수역 조업 문제를 둘러싼 한.일간 외교분쟁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일본 정부의 무성의와 무경우에 할 말을 잊게 된다.

역사 왜곡으로 물의를 빚은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은 그제 자기들이 만든 교과서 내용 중 9곳을 자율수정키로 했다고 생색을 냈다. 그 중 5곳이 한국과 관련한 부분으로 '중국의 복속국이던 조선' 을 '중국의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 아래 있던 조선' 으로 고치고, 한.일합병과 관련해 '일부 병합을 받아들이자던 의견도 있었다' 는 기술을 삭제키로 했다고 밝혔다.

외견상 성의를 보이는 시늉은 했지만 종군위안부에 대해서는 여전히 아무런 언급조차 없는 등 우리가 '새역모' 측 교과서에 대해 요구한 25개항에 걸친 재수정 요구에서는 한참 비켜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 대변인격인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관방장관이 "대국적 견지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고 칭찬하는 걸 보면 '새역모' 측과 일본 정부의 사전교감을 의심케 한다. 그동안 일본 정부는 검정제도를 들어 재수정은 불가능하다고 누누이 강조해 왔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자율수정으로 역사왜곡의 격랑을 피해갈 것으로 기대한다면 지나치게 안이한 상황판단이다.

이르면 이번 주중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한.중 양국의 재수정 요구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 검토결과가 단순한 말장난으로 끝날 경우 일본 정부는 역사왜곡의 책임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비록 영토분쟁지역이라도 러시아가 실효적 관할권을 행사하고 있는 남쿠릴 열도 수역에서 우리가 입어료를 내고 조업하는 것을 일본이 문제삼는 것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처사다. 일본도 '수산자원 보전 협력금' 명목으로 사실상의 입어료를 러시아에 내고 남쿠릴 열도 주변수역에서 조업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조업중단을 요구하는 것은 국제법과 상식을 벗어난 파렴치가 아닐 수 없다. 북방4도의 영유권 문제가 그토록 중요하다면 대체어장이라도 제공하는 성의를 보여야 할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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