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서 '예수는 없다' 와 한국 토착신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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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오강남 박사의 인문적 신학서 『예수는 없다』에 나오는 메시지란 실은 학문적으로는 구문(舊聞)일 수 있다.

1960년대 이후 서구에서 깊숙한 탐색작업이 이미 이뤄진 내용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저자의 표현대로 '꼭 막힌' 국내 제도권 교회의 행태가 이런 '글로벌 스탠더드 신학' 의 성취와 가장 멀기 때문에 그의 책이 충격으로 다가서는 것일 뿐이다.

또 오박사의 책은 1970년대 이후 국내 민중신학의 비약적 성취에서 거듭 확인됐던 사항이기도 하다. 민중신학은 해방후 인문학 전체를 통틀어 가장 괄목할 만한 지적(知的).도덕적 성취로 꼽힌다.

구문(舊聞) 신간 『예수는 없다』에 주목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최신 학문의 정보에 충실하면서도 '대중에게 말을 건네는 방식' 의 친절함은 신학서로는 극히 이례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대중적 신학서는 왜 드물었을까? 국내 학자들이 구름 위에서 놀아온 탓도 있겠지만, 한국사회의 배타적 신앙관이 너무 맹목이고 뿌리가 깊기 때문에 대중설득 작업 자체가 겁이 났기 때문도 있다. 캐나다에 사는 오박사는 '일신상의 안전' 이 보장된다는 강점이 있다.

동시에 기억해야 할 것은 오박사의 문제 제기는 류영모.함석헌, 그리고 민중신학자 안병무 이래로 건강한 토착신학의 성과를 등에 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예수는 없다' 는 글로벌 스탠더드이면서도 동시에 한국사회의 오랜 축적을 반영한다.

한국 기독교 특유의 복음주의 신앙관을 벗어난 첫번째 인물이 바로 다석 류영모(1890~1981). 불교와 노장사상을 넘나드는 그의 다원주의 신학사상은 서구신학에 수십년 앞서는 탄력성을 보였다. 이점은 『다석 사상 전집』(두레)을 통해 더듬어 볼 수 있다.

다석의 제자들이 김교신.함석헌 등이다. 이와 같은 뿌리에서 나왔으면서도 1970년대 독재정권과의 싸움에서 단련된 토착 신학이 민중신학이고, 그것의 최고봉은 '안병무 전집' 을 남긴 신학자 안병무이다.

"지금까지 지배적인 서구의 그리스도론이란 성서를 해석하여 얻은 결론이 아니다. 즉 그것은 그리스 로마적인 세계에서 일반적이었던 신격화된 구원자 상을 예수에게 뒤집어 씌운 것이다. 그레코 로만 세계관이 무너진 지금 그런 그리스도론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 (전집2 '민중신학을 말한다' 104쪽)

안병무는 불교가 중국에 가서 그 문화에 섞이면서 선불교를 탄생시켰듯이, 예수교가 만일 서구의 그리스 로마 문명권 대신 중국 등 동북아 문화에 먼저 유입됐더라면 어찌됐을까 하는 점을 평소에 환기시켰다. '눈이 새파란 예수' 란 없었을 것이고, 현재의 서구의 도그마도 없어졌을 것이라는 것이 분명하다.

조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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