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영섭의 영화질주] '15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7면

일찍이 앤디 워홀은 "누구라도 15분 동안 유명해질 수 있다" 고 호언장담을 했다. 이 말을 이렇게 바꾸어 보면 어떨까? "15분 동안에 유명해지기 위해선 어떤 일을 해야 하나□"

영화 '15분' 은 15분 안에 유명해질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답을 제시한다. 적어도 두 사람이 협업을 해 캠코더를 하나 살 것. 그리고 길거리에 나가서 범죄 행각을 마구 저지를 것. 이때 중요한 것은 범죄 장면을 직접 캠코더에 담은 후, 그것을 거액에 방송국에 되팔아야 한다. 그리고 그 거액으로 유능한 변호사를 사서 법망에서 빠져나오면 여전히 당신은 부자다!

'15분' 은 아이디어가 신선한 영화다. 영화는 이른바 액자영화 형식으로 짜여져 있다. 체코와 러시아에서 온 두 범죄자 에밀과 올렉이 뉴욕을 배경으로 좌충우돌의 살인을 벌이는 캠코더 안의 영화와, 이를 뒤쫓는 형사 에디와 소방관 조디의 활약상이 영화의 두 축을 이루고 있다.

여기에 시청률이면 범죄자건 누구의 사생활이건 모두 다 까발려 상업화하는 방송의 생리와 돈이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는 미국의 속물주의적 근성이 비판된다.

존 허츠펠트 감독은 전형적인 두 형사의 무용담인 버디 무비, 스릴러의 조마조마함, 매스 미디어와 미국사회에 대한 비판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다 좇으며 영화 내내 동분서주한다.

처음부터 범인과 범죄의 동기라는 손 안에 든 패를 다 보여주고도 관객과 끝까지 도박을 벌일 줄 아는 감독의 영리함에는 혀가 내둘러지지만, '15분' 은 그런 만큼 다 보고 나서도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긴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살인 장면을 생방송하고 싶어하는 방송국의 욕망과 그것을 스크린에서 보고자 하는 관객의 욕망을 교묘히 일치시키면서도 사회비판이라는 면죄부까지 얻으려는 감독의 계산된 관음증에 대한 불쾌함 같은 것이리라.

오히려 '15분' 의 진정한 매력은 다 시들어가는 줄 알았던 배우 로버트 드 니로의 저력과 캐릭터의 풍부함에 있는 듯하다. 에디는 '피플' 지의 표지에 등장할 만큼 스타급 형사이지만, 현실에서는 사랑하는 여자에게 청혼하는 것조차 수줍어하고 알콜에 빠져 허우적 댄다.

방송 카메라 앞에서는 날고 기는 에디가 사랑하는 여인에게 청혼하기 전에 거울 앞에서 몇 번이나 사랑의 말을 연습하는 대목은 기이한 모순을 느끼게 한다.

그는 정작 공적인 영역을 벗어나면 맥을 못추는 그런 인간이고, 뒤집어 보면 자기 일에 열심이면서도 명성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에디와 살인자들의 심리는 무엇이 다른가. 우리 역시 이 점에 대해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가?

스너프 필름(범죄 장면을 직접 찍은 영화)과 다큐멘터리, 공공 방송과 개인적인 저널리즘으로서의 영화 찍기의 경계를 시험하는 '15분' 은 이미지로 넘치는 신세계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일어난 일보다 일어난 일을 전하는 보도가 과잉인 시대, 현실보다 가상현실이 더 과잉인 그런 시대에는 신창원도 의적이 된다. 박노항 원사도 스타가 될 수 있다.

심영섭 <영화평론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