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양의 집"에 입주한 제어기기 제조업체 오므론의 작업장.
지난 1일 오전 일본 규슈(九州) 오이타(大分)현의 온천도시로 유명한 벳푸(別府)시. 시내 중심지에서 차로 10여분 들어가니 '태양의 집'이란 큰 단지가 나타났다. 본관 6층 건물과 별관 두개 동에는 '소니''혼다''후지쓰''미쓰비시상사''오므론(omron)' 등 유명 기업 8개사의 간판이 제각각 걸려 있다. 이곳으로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의 출근 행렬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곳은 각 기업들이 사회복지법인인 '태양의 집'과 공동 출자해 별도 법인을 만들거나 협력업체로 들어와 만든 이른바 '휠체어가 있는 공장'이다.
예컨대 1층에선 소니의 장애인 종업원들이 마이크.헤드폰을 만들고 2층에선 오므론의 장애인 종업원들이 각종 스위치와 소켓을, 3층에선 혼다가 자동차 및 오토바이 부품을 만드는 식이다. 개별 기업들이 마지못해 장애인을 약간명씩 고용하는 한국과는 차원이 다르다.
◆ "일에는 장애가 없다"=이곳의 계단과 복도 등 모든 시설은 장애인 편의를 고려한 '배리어 프리(barrier free)'다. 인근에 들어선 수퍼마켓.은행도 장애인을 위해 계산대와 창구의 턱은 낮게, 통로는 넓게 만들었다.
'세상에 심신장애인은 있어도 일에는 장애가 있을 수 없다''보호보다는 기회를'-.
태양의 집 창립 이념이다. 이에 호응한 기업이 하나 둘 모여들면서 이처럼 하나의 큰 단지로 커진 것이다. 이곳에 입주한 대부분의 기업이 전 종업원 중 1.8% 이상을 장애인으로 채워야 하는 노동법 규정을 이미 지키고 있지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란 순수한 동기로 장애인 고용을 늘렸다. 혼다 별도공장까지 합하면 이곳의 장애인 수는 정사원 278명, 시간제 근로자 42명 등 모두 320명이다.
"장애인 종업원이라고 전혀 다를 게 없습니다. 여기서 장애인들이 소켓만 매달 100만개 이상 만듭니다. 이는 일본 시장 점유율 1위입니다." 제어기기 제조업체인 오므론의 온마에 데루오(御前照夫)공장장은 "보수도 다른 오므론 공장의 종업원들과 차이가 없다"고 했다. 그 역시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지만 "이제까지 여기서 생산된 1200만개의 소켓 중 불량품은 단 한개밖에 나오지 않았다"고 자랑했다. 이곳 공장들의 또 다른 특징은 장애인의 눈높이에 완전히 맞춘다는 점이다. 각 종업원들이 어떤, 어느 정도의 장애를 갖고 있는지를 고려해 그에게 맞는 공정에 배치할 것이라는 상식과 달리 공정을 아예 그 종업원에게 맞게끔 바꾼다는 것이다. 예컨대 오므론의 경우 센서공정에서 휠체어를 탄 종업원이 드릴로 작업하던 것을 "무리한 힘이 든다"며 에어실린더로 바꿔 편의를 도모했다.
◆ 컴퓨터 작업도 척척='태양의 집'에선 단순 작업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별관 2층의 미쓰비시상사 사무실은 입구부터 보안이 철저하다. 이곳에선 비록 하반신은 불편해도 지적 능력이 뛰어난 컴퓨터 프로그래머 20여명이 컴퓨터 작업에 여념이 없다. 휠체어를 탄 이들의 편의를 위해 각종 전선 및 코드가 모두 천장에 매달려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이들은 미쓰비시상사의 급여.인사시스템 프로그램을 직접 구축하는 막중한 임무를 담당한다. 그뿐 아니다. 오이타현의 생활보호시스템 프로그램도 이들의 몫이다.
장애인 종업원들의 업무 효율이 높아지면서 공장 규모가 확대되는 사례도 있다.
혼다의 경우 '태양의 집' 공장에서 차로 5분 정도 거리에 1만3500평 규모의 히지(日出)공장을 추가로 세웠다.
혼다의 모든 자동차 후미등과 중앙잠금장치, 오토바이의 속도계 및 깜빡이는 이곳에서 만든다. 또 자동차 디자인을 설계하는 CAD프로그래머도 20여명이 포진해 있다. 혼다의 경우 '태양의 집' 공장을 포함해 총 164명의 종업원 중 100명이 장애인이다.
오른손에 장애가 있고, 지난 장애인 올림픽에서는 평영 100m 부문에서 5위를 차지했다는 아라 지카라(荒力.29)는 "한 손으로 작업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며 의욕을 보였다.
벳푸=김현기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