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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전쟁나도 말싸움만 할텐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북한 상선의 영해 및 북방한계선(NLL) 침범문제를 둘러싼 여야 공방이 가관이다. 국가안보에 관한 중대사안을 놓고 당파적 감정들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천박한 비난전이 펼쳐지고 있다.

특히 정부.여당은 미온적 대응에 따른 1차 책임이 있는데도 반성은커녕 당연한 비판에 발끈하며 말꼬리 잡기식 티격태격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는 "튼튼한 안보의 바탕 위에 포용정책도 있다" 며 우리 군이 경고.검색.나포하는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국가안보를 걱정하는 국민의 우려를 대변하는 야당 대표로서 타당성 있는 비판이다.

여당의 김중권(金重權)대표도 "재발할 경우 교전수칙에 따라 단호히 대처하라" 고 촉구한 걸 보면 우리 군의 느슨한 대응이 잘못됐다는 인식에 여야가 공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李총재는 국가보위 책무 소홀에 대해 대통령의 사과와 국방부 장관 해임 등 책임론을 제기했다.

"안보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 답방은 무의미하다" 고도 했다. 대통령을 공격하고 현 정부가 심혈을 기울이는 사안을 건드림으로써 심기가 불편해졌는지는 모르겠으나 국가안보라는 중요성에 비춰볼 때 야당 총재로서는 충분히 제기할 수 있는 내용이요, 수위(水位)라고 본다.

그에 대한 정부.여당의 반응은 지나치게 신경질적이다. 金대표의 반박회견을 시작으로 간부회의.브리핑.기자간담회 등을 통해 '정치적 이용' '군 사기에 상처' '정부.여당 흠집내기' 등 이틀째 총반격을 펼쳤다.

심지어 "李총재 일가 중 9명이 군대에 안 갔다" "李총재의 주장은 전쟁을 하라는 거냐" 는 등 엉뚱한 인신공격과 말꼬리 잡기까지 동원되고 있다. 야당도 질세라 총장.대변인.부대변인이 일제히 나서 "현 정권의 주적(主敵)이 북한이냐, 한나라당이냐" 등 막말을 퍼부어 댄다.

안보대책은 사라지고 감정싸움으로 번져가고 있다. 국가안보가 걸린 중차대한 사안인 만큼 제발 이성을 되찾아 대책 마련에 만전을 기하길 바란다. 이러다간 막상 전쟁이 나도 말싸움만 벌일 것 같아 국민은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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