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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10대산업 키우자] 9. 베네통의 발빠른 마케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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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색깔의 왕국' 으로 불리는 이탈리아 베네통사는 1950년 가내수공업에서 시작해 한해 1억벌, 2조원 이상의 옷을 파는 세계적 패션기업이 됐다.

까다롭고 변덕스러운 젊은이들의 욕구를 가장 빠르게 잡아채 세계 캐주얼 의류시장을 장악한 베네통의 성공 비결을 이탈리아 현지 취재를 통해 분석한다.

이탈리아 북부 도시 트레비소 인근 폰차노 마을에 있는 베네통의 본사 건물은 17세기에 건립된 지방 귀족의 별장을 재건한 것이다. 건물 곳곳에 그려진 화려한 프레스코화와 5월의 맑은 햇살 아래 놓인 녹색 잔디밭은 베네통의 트레이드 마크인 '색' 과 잘 어울려 보였다.

그러나 베네통 임직원들 가운데 성공비결로 색 자체를 강조하는 사람은 의외로 드물었다. 페데리코 사르토르 홍보실장은 "전세계 경쟁업체 중 베네통처럼 발랄하고 감각적인 색깔을 만들 수 있는 곳이 여럿 있다. 문제는 끊임없이 변하는 시장의 욕구를 잡아내 남보다 빨리 제품을 공급하는 능력" 이라고 강조했다.

◇ 고객에게 최단 시간에 다가간다〓전세계 1백20개국 5천여 매장을 갖고 있는 베네통은 매장에서 주문이 들어오면 이르면 8일, 늦어도 3주일 이내에 제품을 공급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효율적인 생산.물류체제가 뒷받침돼야 한다.

베네통 본사에서 자동차로 약 5분거리에 있는 카스트레트 공장. 사장교(斜張橋)를 본떠 지붕을 만든 독특한 외관의 이 공장에서는 니트.바지.셔츠 등 1년에 8천만벌의 옷이 만들어진다. 이 공장과 본사 디자인실은 광케이블로 연결돼 패턴.디자인.색상 등 생산에 필요한 모든 정보가 실시간으로 전달된다.

6만여평 가까운 공장에 직원은 불과 1천여명. 거의 모든 공정이 자동화돼 있는데다 염색.재단 등 핵심 공정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아웃소싱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완제품은 자동으로 포장돼 '베네통의 심장' 이라는 공장 옆의 대형 물류센터로 옮겨진다. 1984년에 지은 6천여평의 이 물류센터에서는 하루 3만여개의 상자가 로봇과 바코드 시스템에 의해 자동으로 분류돼 전세계 매장으로 배송된다.

고객의 주문에 재빨리 대응하기 위한 적시(適時.Just In Time)생산 시스템은 베네통의 자랑인 염색에도 적용된다. 직물을 염색한 뒤 옷을 짜던 방식에서 탈피, 미리 옷을 만들어 놓은 뒤 주문이 들어오면 그때 색을 들이는 '후염(後染)기술' 이 그것. 그만큼 주문에서 출시까지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이런 신속성과 유연성을 유지할 수 있는 기초는 바로 뛰어난 전산 네트워크다. 베네통 본사의 메인 컴퓨터는 전세계 70여명의 지역별 판매대리인의 전산망을 매개로 5천여 매장과 거미줄처럼 연결돼 있다. 매장의 판매정보는 24시간 본사로 올라와 제품개발 및 판매 전략의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 생산보다 기획과 마케팅〓 "생산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전세계 소비자들의 기호를 읽어내는 감각과 판매 전략이다. "

베네통 그룹의 설립자이자 회장인 루치아노 베네통의 얘기다.

베네통의 디자인실에는 다양한 국가 출신의 젊은 디자이너 2백여명이 근무한다. 디자이너실을 '다국적군' 으로 만든 것은 각국의 미묘한 문화적 차이와 이에 따른 유행의 흐름을 포착하기 위해서다. 베네통 회장도 토론에 자주 참여한다. 이들이 내놓는 샘플은 한해 5천여종 가까운 스타일과 2백50여 색상으로 전세계 소비자들의 기호를 거의 포괄하고 있다.

베네통의 실험정신이 집약된 곳은 이 회사가 1994년 설립한 예술 아카데미인 '파브리카' . 전세계에서 선발된 젊은 예술가들이 창작활동에 전념할 수 있게 지원하는 파브리카는 베네통 그룹에 신선한 아이디어와 이미지를 제공하는 커뮤니케이션 센터 역할을 한다.

베네통 마케팅의 핵심은 광고다. 에이즈.테러.사형수 등 충격적 소재를 등장시켰던 베네통의 광고는 '제품이 아니라 이미지를 판다' 는 전략이 멋지게 성공한 예. 그러나 이같은 광고에 식상하는 반응이 나타나자 지난해 베네통은 16년간 이런 광고를 만들어 온 사진작가 올리비에르 토스카니와 과감히 결별했다. 대신 파브리카의 젊은 사진작가들로 하여금 제품 위주의 광고를 만들게 하는 새로운 전략을 택했다. 지난해 베네통이 광고와 기업홍보에 쓴 돈은 약 1억달러로 전체 매출의 6%에 육박한다.

베네통은 90년대 후반 들어 캐주얼 일색에서 탈피해 노르디카.롤러블레이드.킬러루프 등 유명 스포츠 브랜드를 인수하고 화장품 사업에도 진출하는 등 사업다각화를 꾀하고 있다. 또 소매점을 통한 판매가 정체에 들어가자 베네통의 모든 브랜드를 하나의 대형 매장에 진열하는 이른바 '메가스토어' 를 세계 대도시에 잇따라 세우는 등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젊음과 감각을 상표로 한 베네통의 실험이 21세기에도 여전히 성공을 거둘지 주목된다.

폰차노(이탈리아)=이현상 기자

도움=이재덕 산업연구원 연구위원

◇ 다음 호에서는 10대 업종 가운데 다섯째로 정보통신 산업을 다룹니다. 국내 정보통신 산업의 실태와 육성방안, 작은 나라 핀란드에서 탄생한 정보통신의 거인(巨人) 노키아사 벤치마킹을 두 차례로 나눠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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