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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세 상속" 종신보험 열풍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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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지난주 수도권의 한 성형외과원장 K씨(42)는 부인 명의로 4억원, 두 자녀 명의로 3억원씩 모두 10억원의 종신(終身)보험에 들었다. K씨 본인은 피보험자로 했다.

매달 2백만원 정도의 보험료를 내면 K씨 사망시 보험계약자이자 수익자로 돼있는 부인과 두 자녀는 일시금으로 10억원을 받게 된다.

그러나 정작 보험료 2백만원은 부인과 두 자녀가 아니라 K씨 본인이 매달 내고 있다.

최고 30억원까지 가입할 수 있는 고액 종신보험이 이처럼 상속 수단으로 이용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고율의 상속.증여세를 물어야하는 현금.금융자산.부동산 등과 달리 이 보험을 편법적으로 이용하면 세금없이 재산을 물려줄 수 있다는 점을 활용하는 것이다.

가장이 보험료를 내고 가족이 보험금을 타면 과세대상이지만 소득이 있는 부인이나 자녀가 보험료를 낸 것처럼 만들어 세금을 피하는 것이다.

국내 생명보험 업체들이 고소득층을 대상으로 이런 이점을 은근히 홍보하면서 가입자가 급증하고 있다.

◇ 종신보험 열풍=지난 2월 서울 강남 테헤란밸리의 30대 벤처사업가는 한 보험사에 30억원까지 보상되는 'VIP 종신보험' 에 가입했다.

해당 보험사 관계자는 "수백억원대 자산을 가진 그가 미리 상속에 대비해 보험에 든 것" 이라고 말했다. 사망시 이 보험금으로 나머지 재산의 상속세를 대납(代納)할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 보험사가 종신보험을 처음 내놓은 지난해 8월 이후 30억원짜리 보험에 든 고객만 이미 10명을 넘어섰다. 이 회사는 이를 통해 이달에만 70억원의 신규 보험료 수입을 올렸다. 지난달의 두배다. 경쟁 보험사에도 20억원의 최대 금액을 계약한 VIP 고객이 수십명에 이른다.

종신보험을 국내에 처음 들여온 외국계 보험사는 1994년 30억원이던 신규 보험료 수입이 올해 2천4백억원대로 급신장했다.

◇ 편법상속 논란〓지난해 1월 지방의 소아과원장 유모(당시 40세)씨는 종신보험에 가입한지 19시간 만에 급성 심근경색으로 숨졌다.

첫회 보험료(2백3만원)만 낸 그의 부인과 자녀들에게 지급된 보험금은 10억6백만원이었다. 보험료를 낸 계약자와 수익자가 부인.자녀로 돼있어 상속세와 증여세를 물지 않았던 것이다.

이를 계기로 국내에 생소하던 종신보험이 부유층 사이에 급속히 알려지게 됐다는 것이 보험업계의 설명이다. 특히 일부 보험사는 생활설계사를 통해 세금 피하는 방법까지 계약자들에게 알려주며 고객을 끌어들이고 있어 논란을 빚고 있다.

한 보험설계사는 "미성년자는 본인이 직접 보험료를 부담하지 않아 나중에 상속세 등을 추징당할 수 있다" 며 "때문에 미리 부모에게 매달 보험료만큼 증여받는 것으로 세무서에 신고토록 해 나중에 면세혜택을 받도록 안내하고 있다" 고 털어놓았다.

국세청 관계자는 "세법상 사망보험도 금융자산으로 간주돼 상속이 발생한 것으로 본다" 며 "하지만 보험의 경우 보험료 납입자가 망자(亡者.피보험자)인지, 수익자인지 가려내야 하므로 추징이 쉽지 않다" 고 말했다.

◇ 종신보험=피보험자가 노환.질병.재해 등으로 숨질 경우 보험금액을 지정된 수익자에게 지급하는 생명보험 성격이다. 사망보험으로도 불린다. 1990년대 초 외국계 보험사가 국내에 들여왔다.

정효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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