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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피치] 군복무, 희생정신·리더십 기를 기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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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그나마 럭비선수 출신 중대장을 만난 것이 다행이었다. 야구 장비하고 비슷한 것이라고는 삽자루가 고작이었던 병영.

그는 운동선수를 이해하는 중대장 덕택에 몸만들기는 제대로 할 수 있었다. 중대장은 하체 단련이 중요하다며 시간날 때마다 달리기를 할 수 있게 해줬다. 경남 함양의 보병 사단에서 그는 오늘을 준비했다.

권용관(25.LG).

그는 프로야구 선수 가운데 몇 안되는 예비역 육군 병장이다. 그는 '현역으로 군에 입대하면 선수생활은 끝장' 이란 통념을 시원하게 깨버린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지난해 5월 군복을 벗고 LG에 돌아가 2군에서 착실히 올 시즌을 준비했고 지난 겨울 혹독하기로 소문난 김성근 감독의 제주도 지옥 훈련을 불평 한마디 없이 소화했다. 그리고 홍현우의 부상과 안재만의 트레이드로 빈 1군 3루수 자리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연봉 2천만원.

상조회비와 숙소비를 빼고나면 통장에 입금되는 돈은 한달에 1백만원이 조금 넘는 박봉이다. 그러나 그는 "그때 흘린 땀을 생각하면 운동장에서 뛰는 시간이 너무 행복하다. 이런 돈을 한 푼이라도 헛되게 쓸 수 없다" 고 말했다.

SK 양용모(34).

그는 동아대를 졸업하고 1991년 빙그레(한화의 전신)에 입단할 당시 손꼽히는 유망주였다. 그러나 프로에 적응하려할 때쯤 군입대통지서가 날아왔고 한창이던 93년 스물여섯의 나이에 머리를 깎고 입영열차를 탔다.

경기도 양평의 보병사단. 이때 그는 모든 것을 포기했다. 한창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어야할 나이에 병영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자신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당시 빙그레 동료였던 임주택(한화).김인권(은퇴)이 글러브를 갖고 면회간 어느 날 그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당시 빙그레 감독이었던 김영덕 전 감독의 조언도 힘이 됐다. 김감독은 "너의 재능이면 제대 후에도 프로에서 뛸 수 있다. 포기하지 말고 준비하라" 고 용기를 북돋워줬다.

96년 제대한 뒤 삼성 유니폼을 입고 현장에 돌아온 그는 99년 쌍방울을 거쳐 지난해부터 SK에 몸을 담았고 현재 주전 포수이자 팀의 주장이다. 프로야구 선수협의회 부회장도 맡고 있다. 그는 "군복무 시절 다시는 유니폼을 못 입을지 모른다고 생각했을 때 몸서리치도록 야구를 하고 싶었다. 지금 한 타석 한 순간이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진다" 고 했다.

올 시즌 3승을 올리며 현대 선발진에 합류한 전준호도 현역 복무를 마친 병장 출신이다. 이들이 시사하는 바는 운동선수일지라도 군대는 정거장일 뿐 종착역은 아니라는 것이다.

축구 국가대표팀 히딩크 감독까지 "한국 선수들은 기량 향상이 가장 중요한 시기에 군에 입대해야 하기 때문에 선수 생명을 갉아먹는다" 고 아쉬워했지만 편법으로 입대를 회피하거나 운동을 포기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면 이들처럼 군복무를 희생 정신과 리더십을 배울 수 있는 기회로 삼는 게 바람직하다.

이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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