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에도 인문학이 필요하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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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호 30면

강우석 감독이 ‘아바타(avatar)’를 보고 한국에서 태어난 것을 후회했다며 모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학교가 창의성을 담보해 주지 못하므로 전대미문의 히트 작품을 만들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뜬금없이 금융·경제 칼럼에서 교육 이야기냐고 독자들은 다소 의아해할 것이다. 그것도 돈 불리는 방법이나 금융상품 소개가 아니라 우리나라 교육제도에 대한 단상을 늘어놓고 있으니 말이다.

김우진의 캐나다 통신

금융은 사람을 상대하는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이다. 한 나라의 금융산업에는 개인, 기관투자가, 감독당국 등 다양한 형태의 시장참가자가 존재하며, 이들의 인적 역량에 따라 그 나라의 금융 경쟁력이 크게 좌우된다. 시장참가자의 사고 체계 또한 합리적이고 평균인의 상식에 맞아야만 금융 부문이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반대의 경우 쏠림 현상(herd behavior)과 비이성적·투기적 금융 행태가 나타나기도 한다.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의 주범 격인 신용부도스와프(CDS· credit default swap)처럼 ‘통제되지 못한’ 신용파생상품이 대표적인 예다. 이처럼 교육은 금융 부문의 발전을 제어할 수 있다.

제21회 겨울올림픽이 열렸던 캐나다 밴쿠버는 초·중등 과정 커리큘럼의 상당 부분을 그림 그리기에 할애하고 있다. 수리, 논리, 이성적 판단을 지배하는 좌뇌와 함께 감성, 창작, 느낌을 지배하는 우뇌를 균형 있게 발전시키려는 의도에서 만들어진 체계다. 그래서 사회, 과학, 심지어 작문 숙제까지 시각적(visual)인 부분을 요구한다. 재미있는 것은 아이나 학부모 모두 이를 반긴다는 점이다. 한번 생각해 보라. 그림을 그리다 보면 숙제 하는 데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주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고, 가족과 상의하면서 작업을 하다 보니 가정도 화목해진다. 무엇보다도 그림을 통해 자칫 소홀하기 쉬운 우뇌의 발달을 촉진시키니 일석삼조다. 미적 감각이 좋아져 우아한 삶을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학문을 깊이 탐구하기 원하는 학생은 대학교에 진학하고 50% 이상의 학생들은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사회로 나간다. 이미 콘텐트가 있는 아이로 컸기 때문에 이른 나이에 자립해도 문제가 없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주입식 교육 관행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외고 입시 전형이 바뀌기라도 하면 다들 난리법석이다. 최근 들어 모 대학의 개혁 드라이브가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상아탑에 경쟁을 도입하려는 의도는 좋으나 뭔가 아쉽다. 인문학은 더 육성되어야 할 분야이지 퇴출 대상이 아니다. 대신 중점을 두겠다는 회계·한문·영어 같은 과목들은 사실 중·고등학교에서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공교육의 정상화 없이 대학교육을 개혁한다는 것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금융은 경영학·경제학을 전공한 사람만이 선택하는 분야가 아니다. 어쩌면 문학·역사·수학·물리학 등을 공부한 학생이 더 성공할 수 있다. 세계적인 투자은행에서 역사학 전공의 직원을 만나보는 일은 어렵지 않다. 1997년 말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외국인 투자가와 접할 기회가 많았던 필자로서는, 그들의 역사를 좀 더 알았더라면 설득력 있게 우리 상황을 설명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금융인에게 금융지식은 필요조건이지 성공의 충분조건이 되지 못한다. 금융지식은 단편적으로 또 짧은 기간에 습득할 수 있으나, 기초학문은 긴 호흡을 가지고 체득하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렵다.

이처럼 서비스산업의 경쟁력은 학문 간 경계가 무너지고 기술이 융합되어 고객을 감동시킬 수 있을 때 배가된다. 아울러 남들과 구별되는 창의적 사고를 바탕으로 일을 할 줄 알아야 부가가치가 창출된다. 다양성이 인정되지 않는 획일적 교육시스템하에서 금융의 미래는 암울하다. 창의적 사고와 행동양식을 겸비한 전문 인력의 확보를 언제까지 해외에 의존할 것인가. 대학이 실용적인 학문을 가르치겠다면 캐나다 워털루대학의 코압(cooperative) 프로그램을 참조해 보라. 예를 들어 건축학과 학생의 경우 매년 한 학기는 수업을 듣고, 한 학기는 인턴으로 일을 해야 졸업이 가능하다. 학생들은 코압 프로그램을 통해 살아 숨 쉬는 지식과 글로벌 마인드를 키울 수 있다. 캐나다 기업에는 세제 혜택도 있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다.

회계 감사가 마무리 되면서 코스닥 기업 중 상당수가 상장 폐지될 전망이다. 개인들은 주식시장에서 머니게임에 더 몰두하고, 이를 통제할 수 있는 시장 메커니즘은 사라진 지 오래인 것 같다. 폭탄 돌리기에는 기관투자가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나라 금융시스템의 불완전성에 다시 한번 놀란다.

캐나다 출신의 세계적인 금융인을 꼽아 보라면 난 모른다. 알 필요성도 못 느낀다. 여기 교육시스템은 그런 사람이 대접받는 상황을 연출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균인의 상식이 통하는 금융시장, 금융산업, 금융인은 매번 경험하고 또 만난다. 캐나다가 글로벌 금융위기를 비켜난 것은 우연이 아니라 삶을 균형 잡게 만들어주는 교육제도 때문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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