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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 부실기업주 돈빼돌리기에 쐐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역외펀드와 해외 투자를 가장한 기업주의 외화 빼돌리기가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국세청이 23일 검찰에 고발한 대한생명과 한보그룹 계열사인 동아시아가스의 외화 도피.탈세 사건은 공교롭게도 두 회사의 사주들이 이미 비슷한 사건으로 처벌을 받은 공통점이 있다.

구속 중인 한보 정태수 회장은 1997년 동아시아가스가 갖고 있던 러시아석유공사의 지분매각 대금(5천7백90만달러)중 절반 이상(3천2백70만달러)을 빼돌렸다가 구속과 함께 세금 3백63억원을 추징당했다.

신동아그룹 최순영 회장도 '㈜신아원 사건' 으로 99년 구속돼 집행유예를 받았다.

당시 신아원(현 SDA인터내셔널)은 위장 무역으로 1억6천5백만달러의 해외 비자금을 조성했다가 적발됐는데 이번 대한생명 사건은 바로 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또 다시 빚어진 일이다.

崔회장은 당시 해외자금을 들여와 신아원의 채무를 갚는 데 1억달러를 썼는데 여전히 6천5백만달러가 부족하자 계열사인 대한생명을 다시 동원했다. 해외 유령회사를 통해 8천만달러의 자금을 조성한 뒤 이 중 6천9백만달러를 채무상환용으로 썼고 나머지 1천1백만달러를 빼돌린 것으로 국세청은 보고 있다.

국세청은 한보 사건의 경우 2세들의 재기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대한생명 사건은 외화 도피로 발생한 그룹의 위기를 같은 방법으로 막으려다 벌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대한생명측은 국세청이 현 이정명 대표이사를 함께 고발한 데 대해 "당시 손실을 과대계상해 탈세한 것은 崔회장측 주도로 이뤄졌으며 李대표는 법인의 대표라는 위치 때문에 고발된 것에 불과하다" 고 해명했다.

한편 이들 해외도피 자금은 현재로선 회수가 어려운 상태다. 해외 자금도 압류할 수는 있지만 사실상 '점유 능력' 이 없어 형식적 조치에 불과하다. 실제로 한보 정태수 회장의 경우 97년 그룹 부도 때 채권은행이 鄭회장의 동아시아 가스 지분(49.5%)을 압류했지만 한보측이 외국에서 이 지분을 임의로 매각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그러나 국세청 관계자는 "이들이 사법처리 과정에서 법적.세무 책임을 최소화하려면 결국 도피자금을 들여올 수밖에 없고 실제 그런 선례가 있다" 고 말했다.

이효준 기자

◇ 역외펀드〓세금이나 자산운용의 제약을 피하기 위해 제3국에 조성된 주식투자용 기금. 버뮤다.아일랜드.말레이시아 등 주식 매매에 대한 세금이 없는 조세피난지에 본거지를 두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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