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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노인 대망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실낙원』을 쓴 영국의 대시인 존 밀턴은 노인이 걸리기 가장 쉬운 병은 탐욕이라 했다. 노욕(老慾)을 경계하는 경구로 이보다 명쾌한 건 없다. 아집이 지혜를 대신하고, 노쇠가 총기(聰氣)를 대신할 때 노욕은 싹트기 시작한다. 나이가 반드시 지혜를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불교는 나이를 먹을수록 욕심과 집착을 버려야 한다고 가르친다. 『법구경(法句經)』에는 "백발이 나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혜가 나이를 말한다" 고 적혀 있다. 지혜의 빛은 사라지고 분수 모르는 추한 욕심만 남은 백발은 나이를 헛되이 먹은 것이다.

자, 이 노인을 보라. 그의 나이 올해 75세. 얼마전 그는 말했다. "마무리 지을 때 서쪽 하늘을 전부 벌겋게 물들여 보고 싶다" 고. "타다 남은 나무토막 꼴로 있기 싫다" 며 "훨훨 타서 재만 남기겠다" 는 말도 했다.

그러자 시끄럽던 '킹 메이커론' 인지 뭔지는 쑥 들어가고 큰 대(大)자 댄지 기다릴 대(待)자 댄지 모를 '대망론' 이 그의 주변에서 물결치고 있다.

그가 '용좌' 에 오르는 모습을 보는 것이 평생 소원이라는 소리가 나오고, 그가 결심하는 대로 따르겠다는 얘기가 들린다. 묵묵부답이 아니라 소이부답(笑而不答)이 노인의 반응이다. 그 표정이 옥좌에 오르기를 주청(奏請)하는 제장(諸將)들에 둘러싸여 고뇌하는 왕건의 모습이었다나.

"신체적으로 젊은 것만이 청년이 아니고 나이가 들었다고 청년이 아닌 것이 아니며 나이에 상관없이 죽을 때까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현명' 하게 찾아 최선의 노력과 정성을 기울이는 사람이 진짜 청년" 이라고 노인은 말했다. 명언이다. 백번 천번 맞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가 할 일은 무엇인가. 이틀 전 문화일보 여론조사를 보자. 이 노인을 옥좌에 앉히고 싶어하는 사람은 전체 국민의 1.9%에 불과하다. 그가 텃밭이라고 믿고 싶어하는 충청도에서도 3.9%밖에 안된다.

그가 어떤 말을 타고 출마해도 용좌에 오를 가능성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다. 그렇다면 할 일은 자명해진다. 때가 지난 것을 인정하고 조용히 물러나는 것이다. 하루에 18홀을 돌든 36홀을 돌든 그 좋아하는 골프나 실컷 치는 것이다.

그가 '구국의 결단' 이라며 권총을 차고 선글라스를 낀 청년장교의 모습으로 대중 앞에 섰을 때 막 걸음마를 시작했던 갓난아기가 지금은 40대 중년이 됐다. 노인의 '대망론' 앞에서 진저리치는 이들의 심정을 헤아린다면 어찌 소이부답일 수 있는가. 타다 만 나무토막이 때로는 더 아름다울 수 있다.

배명복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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