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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출판] '바람난 부부의 세계여행1'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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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처음 이 책을 집어 들었을 때 혹시 이책이 신세대 부부의 치기어린 투정쯤이 안될까 싶은 판단이 들었다. 그러나 책에 빠져들면서 어느 정도 그 편견을 수정해야 했다.

범상치 않은 '지구촌 답사 강행군' 을 자청한 뒤 그 속에서 여물고 단단해져 가는 주인공 부부의 사랑, 그리고 이 과정에서 리얼하게 리포트된 여행정보를 접하다 보면 시샘 같은 것도 솟아났다. 저자는 올해 서른한 살 동갑내기로 남편(여세호)은 카피라이터요 아내(배영진)는 방송작가다.

대학 동기동창으로 5년간 연애 끝에 결혼해 4년간 한 이불을 덥고 산 이들에게도 권태기는 찾아왔다. 이혼서류에 도장만 찍으면 끝장나는 '위기일발' 의 순간, 둘은 배낭을 꾸려 해외여행에 나서는 극적인 반전의 지혜를 생각해 낸다.

그렇게 시작한 여행길은 무려 2년 20일간 지속됐고 발품을 판 나라만도 40여개 국에 이른다. 여정은 필리핀에서 시작해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 아메리카로 이어졌다.

이 책은 이런 여행의 기록이다. 저자들은 그 장기간의 여정에서 각양각색의 사람과 풍습, 문화를 체험하면서 느끼고 배우고 깨달은 것들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실시간으로 하이텔에 연재했다.

1998년 11월부터 2000년 12월까지의 일인데, 이 때 쓴 이야기들을 책으로 펴낸 것이다. 인터넷 세상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고 보면 부부에겐 신세대란 표현이 맞긴 맞는 것 같다.

어떤 일에서 계기는 역시 중요하다. 그 일 전체의 컨셉트를 결정하기 때문인데, 이혼 직전이라는 계기가 아니었다면 여행기의 대부분은 그저 놀고 먹는 일로 채워졌을 지도 모른다.

이 책에 담겨 있는 사색의 흔적과, 균열을 조금씩 메워가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의 마음씨는, 그래서 중요하고 가치있어 보인다.

필리핀에서 만난 로즐린이라는 창녀를 보고 저자들은 이렇게 한탄한다.

"돈벌이가 필요한 가장들은 술에 취해 비틀거리고 그들의 딸들은 그렇게 거리로 나오는 것이다. 가난한 가정이 무너지는 것에 관심을 갖는 정치가들은 이 나라에나 우리나라에나 극히 드물다. "

굳이 이같은 사회적 발언을 염두에 둘 필요는 없다. 저자들은 여행을 하면서 어느새 '나' 를 허물면 그 속에 '남' 이 들어올 공간이 생긴다는 사실에 놀라워하고, 그런 변화의 과정을 가감없이 적었다.

한쪽이 빨리 걷기만해도 홱 토라져 '네 탓' 을 하던 두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될 '반쪽' 임을 깨닫는다.

결국 그동안의 알력은 '하나를 위한 이중주' 였던 셈이다. 이런 열린 태도는 여행 중 숱하게 접하는 이질적 문화와 세상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가 된다.

이번에 나온 제1권은 '아시아와 북유럽' 편이며, '동유럽과 중동' '아프리카와 서유럽, 그리고 아메리카' 편은 조만간 2.3권으로 엮어져 나올 예정이다. 새 스타일의 여행서로 평가할 만하다.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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