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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기업은 정부의 적이 아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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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재계와 정부 관계가 갈등.대립 양상으로 치닫는 조짐을 보이고 있어 걱정스럽다. 박용성(朴容晟) 대한상의회장과 좌승희(左承熙) 한국경제연구원장이 지나친 기업규제와 재벌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개선을 요구하자 이남기(李南基) 공정거래위원장은 9일 기자회견을 자청, 이를 한마디로 일축했다.

그는 "재벌은 국가경제에 치명적인 체제적 위기" "음주운전 단속을 말라는 얘기냐" 는 등의 강경발언도 마다하지 않았다. 진념(陳稔)부총리 등도 잇따라 쐐기를 박고 나선 반면 전경련은 규제완화를 계속 요구하기로 했다.

한국경제를 이끌어 가는 두 축인 재계와 정부가 이런 식으로 반목하는 것은 수출부진.경기침체 등 난국을 타개하는 데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정부는 재계의 목소리를 바로 '반개혁' 으로 몰아붙이지 말고 귀를 열고 대화를 통해 절충점을 찾는 노력을 해야 한다. 물론 재계도 여전히 문제는 많다. 문어발식 차입경영에 열을 올리거나 오너가 전횡하는 사례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업의 경영.경쟁 여건이 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정부 규제와 간섭이 없어도 이젠 기업들이 전처럼 무모한 확장은 않는다. 자칫하면 망할 판에 누가 장사 안되는 사업에 뛰어들겠는가. 이런 규제는 되레 기업의 탄력적인 의사 결정.시행을 막아 투자 의욕을 떨어뜨리고 경제에 활력을 잃게 한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陳부총리도 '위기 상황에서 만든 규제' 의 문제점을 인정하지 않았던가.

정부는 이번 기회에 기업 활동에 대해서는 자율을 획기적으로 보장하는 쪽으로 규제를 줄여야 한다. 대신 사외이사.외부감사제 등 오너의 전횡을 막을 수 있는 장치를 강화하면 정부가 걱정하는 문제는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우선 30대 기업집단 제도는 없애거나 대상을 확 줄여야 한다. 1~4대와 나머지 그룹간 차이가 수십배까지 나는 마당에 일률적으로 30개로 묶어 관리하겠다는 것은 맞지 않다. 덩치가 커지면 출자총액 규제에서부터 계열사 채무보증 해소.내부거래 조사 계좌추적 등 이중 삼중의 규제를 받는다면 누가 열심히 하겠는가.

출자총액 제한도 이것이 없으면 '무분별한 선단식 경영' 등의 폐단이 있는지에 대해 보다 정교한 검토가 필요하다. 1998년 이 제도를 없앤 후에도 30대 그룹의 재무구조는 나아지는 등 큰 문제는 없었다. 계열사가 늘었다지만 이는 분사 때문이라는 것을 정부도 알지 않는가.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재계, 특히 재벌에 대한 정부와 정치권의 시각이다. 재계에서는 이들이 특히 대기업을 적대시한다는 불안과 불만을 갖고 있다. '민(民)에 의한 자본의 통제' 란 자유기업원 민병균(閔丙均)원장의 주장도 재계 분위기를 대변한다. 이런 본질적 문제에 대한 불안감은 우리 경제에 치명적이다.

정부는 하루 빨리 이런 불안감을 씻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정부가 재계를 경제 성장의 한 축이자, 경제발전의 파트너로 존중해야 한다. 기업의 기를 꺾지 않고 살리는 방안을 정부.재계가 함께 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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