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DMZ를 인류의 소중한 유산으로 가꾸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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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가 어제 비무장지대(DMZ)를 ‘한반도 생태평화벨트’로 조성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한국전쟁 60주년을 맞아 분단과 비극의 상징인 DMZ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생태 관광지대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지금까지 DMZ 개발은 각 부처별로 산발적으로 진행돼온 게 사실이다. 경기도와 강원도 등 지자체들도 각개약진에 주력해 왔다. 최근에는 DMZ 가치의 재발견과 함께 개발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앞다투어 DMZ 박물관을 짓고, DMZ 패키지 여행상품까지 등장했다.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가 이런 혼선을 정리하고 범 정부 차원의 종합 대책을 마련한 것은 뒤늦은 감이 있지만 다행이다.

DMZ는 2억7000만 평 규모로 길이 248㎞, 폭 4㎞에 이른다. 세계 유일의 분단 현장이자 57년간 인간의 발길이 통제된 금단(禁斷)의 땅이었다. 지금까지 DMZ는 버려진 땅,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곳으로 인식돼 왔다. 그런 DMZ가 이제 한반도의 마지막 청정지대이자 생태계의 보고(寶庫)로 거듭나고 있다. 그동안 현장조사를 통해 DMZ는 16종의 천연기념물과 67종의 멸종 위기 생물들이 서식하는 뛰어난 생태 공간으로 확인됐다. 또한 DMZ는 세계적 관광명소가 될 충분한 잠재력을 갖추고 있다. 외국인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30%가 DMZ를 한국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곳으로 꼽았다. 실제로 지난해 임진각을 찾은 관광객 516만 명 가운데 외국인이 45만 명을 차지했다.

그러나 DMZ 개발은 생태계 보전을 위한 친환경 체험관광으로 엄격히 제한할 필요가 있다. DMZ가 무분별한 개발의 희생양이 돼서는 절대 안 된다. 그동안 민통선(民統線)이 슬그머니 북상하고 DMZ 주변 땅에 투기 바람이 불기도 했다. 모두 불길한 조짐이다. 정부는 인위적인 손길 자체가 마구잡이 개발과 환경 파괴를 부르기 때문에 DMZ를 있는 그대로 놔두라는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런 마찰을 사전에 차단하려면 DMZ가 유네스코의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되도록 추진하는 방안을 서둘 필요가 있다. 그 사전 단계로 남북협력을 통해 공동 생태조사에 착수하도록 북한을 지속적으로 설득해야 할 것이다.

DMZ는 불행한 현대사의 대가로 얻은 자연의 보고다. 이제 국토의 허리가 잘리는 아픈 과거를 딛고 DMZ의 미래를 바라봐야 한다. 백두대간이 포효하는 호랑이의 척추라면, DMZ는 우리의 미래를 짊어질 녹색 허파다. 경제적 가치를 위해 생태적 가치를 결코 희생시켜선 안 될 소중한 땅이다. 또한 DMZ는 한국전쟁 60주년을 상징하는 역사적 유산이다. 분단의 아픔이 서린 DMZ가 이제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염원하는 인류의 희망으로 떠오르도록 하기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한다. 우리 후손을 위해서도 체계적 관리를 통해 DMZ의 무분별한 개발은 막아야 한다. DMZ를 생명과 평화의 땅, 인류의 자산으로 가꾸어 가는 것은 이 시대 우리 모두가 짊어져야 할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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