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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캄보디아가 국제결혼 금지한 대한민국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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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관객 500만 명을 돌파한 영화 ‘의형제’는 전직 국정원 직원과 북에서 버림받은 남파 간첩 사이의 갈등과 의리를 그린 영화다. 탈북자 2만 명, 외국인 100만 명 시대를 맞은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내면이 배경으로 등장하고 있다. 전직 국정원 직원 이한규(송강호 분)의 주업은 도망간 베트남 신부를 찾아 주는 일. “베트남 신부가 도망갈까 봐 수시로 때렸다”고 천연덕스레 말하는 의뢰인이 그의 눈엔 그저 물주일 뿐이다.

캄보디아 정부가 이달 초 한국을 자국인들의 국제결혼 금지국으로 지정했다고 한다. 캄보디아 주재 한국대사관에 국제결혼 신청서 접수를 한시 중단하겠다고 통보해 왔다. 자국 여성들이 한국인과 결혼하는 과정에서 인신매매 우려가 있어 이를 막는 절차를 마련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캄보디아와 수교한 많은 나라 가운데 오직 한국에만 취한 조치다.

지난해 9월 결혼중개업체가 현지에서 캄보디아 여성 25명을 불러다 놓고 한국인 남성으로 하여금 신부를 고르도록 주선하다 적발된 게 계기가 됐다고 한다. 우리의 관습 ‘중매’와도 거리가 먼, 인간 대 인간의 결혼과도 거리가 먼 참담한 광경 아닌가.

여기에다 한국에서 자국 여성들이 임신중에 구타를 당하고 마음에 안 들면 이혼당하는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는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캄보디아 여론은 악화됐다.

훈센 캄보디아 총리는 지난해 10월 프놈펜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에게 한국에 머물고 있는 캄보디아 근로자와 결혼이민자들을 잘 보살펴 달라고 특별히 부탁하면서 “캄보디아 며느리가 있다고 생각해 달라”고 당부했다. 캄보디아인의 국제결혼 상대자의 60%가 한국인이라고 한다. 문제는 불법 중개업체들의 이런 행태가 한두 해 된 일이 아니고, 지역적으로도 베트남·몽골 등에서 광범위하게 활개치고 있다는 점이다. 몇 년 전엔 ‘베트남 신부 100% 후불제, 환불가능’이란 플래카드가 한·베트남 사이 외교 문제로까지 비화된 적도 있다.

대한민국은 전쟁의 상처를 딛고 세계 13위 경제력과 민주화를 달성한, 세계 현대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성공한 나라다. 동남아·아프리카·중동 지역 개발도상 또는 빈곤국들이 모델 국가로 여기고 있다. 이런 기적 위에 소프트파워가 더해져 한류도 형성됐다. 서울 광화문 거리에서 자랑스럽게 ‘대~한민국’을 외칠 수 있는 이유였다.

하지만 주변을 보자. 가난한 나라 출신이라고, 피부색이 다르다고 우리와 같은 인격체로 대접하지 않는 일들이 여기저기서 벌어지고 있다. 국제결혼 중개에 관한 엄격한 법 기준을 마련해야 하는 일도 시급하지만 먼저 우리들 마음속에 자리한 레이시즘을 쫓아내야 할 때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서울 유치와 김연아 선수의 밴쿠버 겨울올림픽 제패로 대한민국의 국격(國格)이 높아졌다고 기뻐하던 게 바로 엊그제다. 진정한 국격은 국민의 성숙된 인격(人格)이 모일 때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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