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가 미래 ‘부의 지도’를 바꾼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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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호 30면

중국의 5대 발전회사 중 하나인 후아냉은 2006년 풍력발전을 통해 산출되는 탄소배출권을 향후 10년간 탄소 1t당 8.7달러에 스페인의 엔데사에 팔기로 하는 거래를 체결했다. 이를 통해 후아냉은 매년 3750만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다. 현재 스페인의 탄소 시장인 센데코에서 거래되는 탄소배출권 가격은 t당 약 15유로 선. 엔데사 입장에서도 구입한 배출권을 모두 시장에 내다 팔면 2배 이상의 시세 차익을 누릴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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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화학회사인 후성도 열분해사업에서 감축한 연간 140만t의 이산화탄소를 셀에 판매해 연간 300억원의 수익을 올린 바 있다. 동부하이텍은 연간 24만t의 이산화탄소를 질산비료 공정에서 감축, 약 200억원의 배출권 거래 수익을 예상하고 있다. 삼성선물·미쓰비시증권 등 금융기업들도 신규 수익원 확보 차원에서 탄소배출권 거래에 앞다퉈 뛰어들고 있다.

탄소가 돈이 되는 시장은 더 이상 남의 나라 이야기만이 아니다. 다음 달부터 국내에서도 ‘저탄소녹색성장 기본법’이 시행된다. 여기에는 에너지 사용과 탄소배출을 줄이고 녹색산업을 경제의 새로운 동력으로 육성하려는 정책 의지가 담겨 있다. 정부는 이 법을 근거로 12월 탄소배출권 거래제도를 입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바야흐로 탄소가 돈처럼 거래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배출권거래제 도입은 우리 사회 전반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202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배출 전망치 대비 30%로 결정했으며, 이를 위해 온실가스 배출량 및 에너지사용량 보고와 총량제한 배출권거래제 도입 등을 준비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온실가스 측정, 보고, 검증체계를 구축하고 국가 배출권거래제 시범 사업을 시행하는 등 본격적인 채비에 들어갔다.

배출권거래제로 가장 큰 영향을 받는 부문은 단연 기업이다. 배출권거래제 도입을 목전에 두고 당장 기업은 자신의 탄소배출량을 정확히 측정하고 분석하는 시스템을 갖출 필요가 있다. 화석연료 사용으로 인한 직접 배출뿐 아니라 전기와 냉난방기 사용 결과 발생하는 간접배출, ‘제3범주’라고 불리는 재화의 수송이나 출장 등에 따른 기타 간접배출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또한 거래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제3자 검증을 통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객관화하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미흡한 대처로 탄소배출량을 제대로 측정하지 못하거나 고의로 배출량을 속이는 분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실질적인 배출권거래 시행을 위해서는 탄소저감기술에 따른 기업의 한계저감비용과 시장에서 형성된 배출권 가격을 비교 분석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본격적인 배출권거래 시행에 앞서 사전준비 차원에서 사내 배출권거래제를 시행하는 기업이 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글로벌 석유회사인 BP는 2000년 일찌감치 사내 배출권거래제를 도입해 전 세계 100여 개 사업장에서 약 10%의 온실가스 감축을 실현한 바 있다.

보다 발전적인 시각에서 탄소배출권에 접근할 필요도 있다. 탄소배출권 시장의 출범은 단순히 탄소배출 감축만이 아니라 다양한 각도에서 광범위한 시장 변화를 촉발할 수 있다. 일례로 탄소저감과 에너지효율화 추세는 보다 작고 가벼운 제품을 선호하는 이른바 ‘경량화 시장’을 요구하게 된다.

먼저 자동차 시장을 보자. 현재 비행기 소재의 90% 이상이 알루미늄과 티타늄으로 구성되는 데 반해 자동차는 그 비율이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전문가들은 알루미늄을 사용한 경량자동차의 경우 연료 절감과 함께 전 세계적으로 연 4억t의 탄소배출량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세계적인 알루미늄 제조사인 알코아가 차량 연비 규제를 적극 지지하는 데는 이런 배경이 깔려 있다. 같은 맥락에서 한화 L&C는 차량 경량화 복합소재 분야에 주력해 가벼우면서 강도가 높은 부품소재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탄소배출권 거래제도의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도 풀어야 할 숙제다. 탄소배출량에 대한 측정과 검증에서 가장 쟁점이 되는 분야 중 하나가 제품 사용 단계에서의 배출이다. 현재의 배출량 산정과 검증은 기업 활동 과정에서 발생되는 탄소배출량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전자제품이나 자동차 등 대부분의 제품은 제조 단계보다는 사용 단계에서 더 많은 탄소배출이 이뤄진다. 이에 따라 월풀과 같은 전자업계 선두 주자들은 제품 사용 단계에서의 배출 감축에 대한 정책적 배려를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과거의 탄소감축 노력을 앞으로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역시 생각해 볼 과제다.

정보기술(IT) 혁명의 결과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 같은 강자가 탄생했듯 머지않아 탄소로 성공한 기업이 나타날 것이다. 실제로 유럽과 미국, 일본을 중심으로 많은 기업들이 이산화탄소를 ‘황금알을 낳는 신경제’로 보고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아직까지는 금융위기의 여파가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성과에 한계를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탄소가 미래의 ‘부의 지도’를 바꿔 놓을 것임은 분명하다. 별일 없겠지 하는 대책 없는 무사안일은 새롭게 열리는 기회의 땅에 진입할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다. 더구나 국내 기업의 입장에서는 기후변화 이슈가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개발도상국 기업과의 격차를 벌리는 호기가 될 수도 있다. 물론 이는 충분하고도 적절한 대비가 따를 때 그렇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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