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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이야기] 못 말리는 '가짜 명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뉴욕의 맨해튼 만큼 빈부 격차가 심한 곳도 없을 것이다.

세계 최고의 거부들이 사는가 하면 거리엔 신문지를 이불 삼아 자는 노숙자들이 수두룩하다.

한끼에 수백달러(수십만원)씩 하는 고급 요리를 파는 레스토랑이 즐비하지만 페들러(일종의 샌드위치 포장마차)에서 1달러(약 1천3백원)짜리 핫도그로 허기진 배를 채우는 사람도 줄을 잇고 있다.

고가상품과 싸구려 가짜상품의 공존도 맨해튼의 대표적 풍경이다. 맨해튼 미드타운 내 5번가와 메디슨가엔 루이비통.베르사체.살바토레 페라가모.구치.샤넬.에스카다 등 일류 브랜드 상점이 즐비하다.

재미있는 것은 페라가모 등 유명 브랜드 상점 바로 옆 노상에서 진품인지 가짜인지 쉽게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게 만든 불법 모조품이 버젓이 팔리고 있다는 점이다.

주로 흑인들이 좌판에서 팔고 있는 이들 가짜는 원산지가 대부분 동남아시아로 가격은 대개 수십달러(수만원)에 불과하다. 뉴욕 내 가짜상품의 메카는 단연 차이나타운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5번가와 만나는 45번~60번가 일대 등 여러 군데에서 불법 모조품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맨해튼에서 모조품이 이처럼 활개를 치는 것은 뉴욕 멋쟁이들의 구매력이 대단하기 때문이다.

수요가 있으니 공급도 자꾸 늘고 있는 것이다. 불법 모조품 제조자들이 유행을 신속하게 따라잡는 것도 맨해튼 거리에서 가짜가 기승을 부리는 또 다른 이유로 꼽힌다.

1천~2천달러짜리 고급 핸드백 신상품이 출시되면 1~2주 만에 이와 겉보기엔 거의 똑같은 모조품이 30~50달러의 가격을 달고 거리에 등장한다.

불경기가 예고되는 올해에는 맨해튼에서 모조품 판매가 더욱 늘 것으로 보인다. 호황의 마감과 함께 가짜상품으로 마음을 달래겠다는 실속파가 많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사태가 이 지경이다 보니 진품업체들은 속이 끓고 있다.

프라다는 자사 가방에 진품임을 확인할 수 있는 특수카드를 부착해 내놓았다. 샤넬은 가짜를 디자인하는 비용이 더 들게끔 디자인이나 무늬를 더욱 정교하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맨해튼 내에서 진품과 모조품의 싸움은 일종의 창과 방패간의 싸움이다.

아무리 정교한 제품을 내놓아도 모조품 제조자들은 이를 반드시 베껴내기 때문이다.

뉴요커들은 맨해튼의 가짜 열기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부자들의 씀씀이가 워낙 커 보통사람들이 진품으로 이들의 멋내기를 따라가려면 주머니가 금방 거덜나기 때문이다.

거리의 가짜상품은 한동안 뉴욕의 풍속도이자 치부로 계속 남을 것으로 보인다.

신중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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