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생명경시 부추겨선 안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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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대한의사협회가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는 낙태.뇌사(腦死).대리모.소극적 안락사 등에 대해 현행법과 배치되는 내용을 담은 '의사 윤리지침' 을 제정키로 해 찬반 논란이 뜨겁다. 보건복지부는 관련 조항들을 삭제하도록 의협측에 요구했으며 앞으로 실행에 옮긴다면 실정법에 따라 처벌한다는 입장이어서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의협은 이 지침에서 '의학적.사회적으로 적절하고 합당한 경우라도 인공임신중절수술(낙태)을 시행하는데 신중하여야 하며…' 라고 규정, 낙태행위를 사실상 인정했다.

또 현행법(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상 장기이식 목적일 때만 인정하는 뇌사를 심장사와 더불어 죽음으로 인정했으며, 금전적 거래관계가 아닌한 대리모에게 인공수정 시술을 가능하도록 했다. 뿐만 아니라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나 가족이 진료 중단이나 퇴원을 문서로 요구할 때 의사가 이를 받아들일 수 있게 함으로써 소극적 안락사를 허용하고 있다.

현행 모자보건법은 강간.근친상간 등에 의한 임신, 임신이 산모의 건강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때 등 극히 제한적으로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안락사는 어떤 법에도 이에 관한 조항이 없어 적발될 경우 의사가 살인죄 등으로 처벌받게 된다. 의사들은 낙태문제만 해도 암묵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등 의료 현실과 실정법의 괴리가 너무 커 이를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윤리지침에서 낙태 등을 허용할 경우 시술이 더 늘어날 것이고 결과적으로 생명 경시를 부추기는 꼴이 아닌가. 더구나 이 지침은 표현들이 모호해 책임소재를 가리기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의사들이 안락사 문제 등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빌미로 법적 책임을 면하려 한 게 아니냐는 의문마저 제기되고 있다.

최근 일부 의사들의 진료비 부당청구 사례 등으로 의료계를 향한 시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 의료계는 국민 신뢰 회복을 위해 자정운동을 서둘러야 할 때다. 그런 연후에 충분한 공론화 과정을 거쳐 윤리지침을 제정해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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