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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고찰 타종소리에 마음은 고요해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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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경부고속도로를 4시간 정도 타고 경산 인터체인지를 빠져나가 한 시간 정도 국도를 달리면 경북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에 자리잡고 있는 운문사(雲門寺)에 닿는다.

▶ 운문사 전경

운문사 가는 길에는 아름다운 숲과, 너른 호수와 계곡이 어울려 있어 혼자가도 심심하지 않다. 도로가에는 씨없는 감으로 유명한 청도 감나무에 가을의 결실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감서리를 하고픈 마음을 아직 설익은 떫은 맛을 떠올리며 달래곤 했다. 그 대신 푸르른 가을의 공기를 배불리 들여마셨다.

국도를 한 시간쯤 달렸을까. 고갯길을 올라서자 호숫길이 나온다. 조그마한 호수로만 알았던 운문호는 파란 가을 하늘을 다 머금은 채 수려한 경관을 뽐낸다. 드라이브 코스로 이만한 곳도 없을 듯 하다. 이렇게 산과 들과 호수와 정담을 나누며 달리다 보면 운문사 입구가 나온다.

호랑이가 걸터앉은 형상이라고 해서 붙여진 호거산(虎踞山) 자락에 고즈넉히 자리잡은 천년 고찰 운문사는 나무와 숲이 좋은 산사로 유명하다. 초가을 운문사 숲길은 어디 내놔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상쾌하다.

▶ 운문사 대웅전 앞 처진 소나무

매표소를 지나면 제일 먼저 빽빽이 늘어선 소나무가 반긴다. 운문사를 수려하게 감싸고 있는 송림이다. 송림을 지나 운문사 바로 앞까지 차를 몰고 들어 가면 주차장이 나온다. 아침 9시부터 입장료와 주차료를 받는다. 귀띔하나 하자면 새벽 예불을 보면 돈을 낼 필요가 없다. 새벽 3시가 되면 어김없이 문을 열고 관람객을 맞이 한다. 새벽 3시 15분에 세 분의 비구니가 불전사물(법고, 범종, 목어, 운판)을 울리고, 200여명의 학인 스님들이 대웅전에 모여 새벽 예불을 시작한다.

운문사의 또다른 매력은 국내 최대 규모의 비구니 승가대학이다. 운문 승가대학(4년제)은 고졸 이상 학력에 어느 정도 수련한 경력(사미니계 이상)이 있고 은사 스님의 추천서가 있는 비구니가 지원할 수 있다.현재 200여명의 비구니가 공부하고 있다. 한국의 비구니는 약 7000여명 정도.남성 승려인 비구와 수가 거의 비슷하다.

현재 국내에 비구니들을 교육하는 도장은 5곳이 있지만 운문사 승가대학은 '군대식'의 엄격한 질서와 규율이 철저하게 지켜지는 곳으로 유명하다.'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一日不作 一日不食'의 정신으로 공부와 일이 따로 있지 않다.

▶ 고추밭의 비구니들

이런 정신에 따라 운문사 옆에 마련된 조그마한 밭에선 10여명의 비구니들이 고추를 따고 있다.잠자리가 날아다니는 가을의 정취 속에 비구니들의 고추 따는 모습이 한폭의 그림같다.

곧 점심시간이 다가 온다. 살짝 스님들의 부엌 살림을 들여다 봤다.나무 장작을 때는 거대한 가마솥과 스님 몇 분이 각종 나물을 다듬고 있다.

공양에 드는 쌀만 해도 하루 한 가마. 김장에는 배추 1만2000포기가 필요하다. 불과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스님들이 손수 쌀농사를 지어 모내기며 벼베기,탈곡까지 했지만 지금은 벼농사는 소작, 밭농사는 직접 지어 먹거리들을 해결하고 있다. 물론 공양과 청소같은 살림살이는 모두 스님들의 몫이다. 공양시간 때만 되면 공양간에서 밥이며 반찬 만들기 소임을 맡은 스님들은 비지땀을 쏟기 일쑤다.

낮 12시, 경내를 조용히 울리는 타종 소리에 마음이 고요해진다. 점심 한술 공양을 하고 싶었지만 왠지 쑥쓰러워 그만두기로 했다.

▶ 운문사 대웅전

운문사 대웅전 앞에 섰다. 새로 개축한 건물이라 깔끔하지만 고상한 맛은 사라졌다. 왼쪽 쪽문 옆에는 가지런히 벗어 놓은 흰고무신 10여 켤레가 놓여 있다. 반쯤 열린 문틈으로 바라 본 대웅전 안에는 비구니들이 눈을 지긋이 감은 채 합장하고 있다. 전생의 업보와 현생의 가르침, 그리고 내세의 성불(成佛)을 기원한다. 그 곳은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탈속(脫俗)의 세계인 것 같다.

문득 똑같은 모양의 흰 고무신을 어떻게 구별할지 궁금했졌다. 잠시 잃었던 정신을 차리고 곰곰히 생각해봤지만 답이 나오지 않는다. 결국 자세히 들여다봤다. 흰 고무신 앞부분에 까만 볼펜으로 저마다 표식을 그려 놓았다. 아 그렇구나.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맛난 음식은 청도역 부근에 있는 원조할매추어탕(054-371-2349)을 추천할 만하다. 걸쭉한 남도식 추어탕과 달리 맑은 국물에 시래기를 듬뿍 넣어 추어탕을 끓여 낸다. 그 이유는 미꾸라지를 삶아 뼈를 발라내기 때문이라고. 추어탕만 판다. 3500원.

한껏 푸르른 하늘을 벗삼아 씨없는 감도 먹고 보양식 추어탕도 먹고…. 이래저래 운문사 주말 여행은 '강추'다.

◇운문사는=신라 진흥왕 18년(557년) 신승이 창건하여 원광법사, 보양국사, 원응국사, 일연선사가 차례로 중창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일부 건물이 화재로 소실됐다지만 여전히 대가람의 면모를 잃지 않고 있다. 특히 이곳에서 원광법사의 세속오계가 전수됐고, 일연선사가 고려 충렬왕 때, '삼국유사'를 쓴 곳으로 유명하다. 이렇듯 유서도 깊고 엄숙했던 절인데다 비구니 승가 대학이 자리잡고 있어 위세가 당당하다.

1955년 금광 스님이 비구니 초대주지로 부임한 뒤 비구니 전문강원이 개설됐다. 운문승가학원이 1987년 4년제 운문승가대학으로 개칭, 지금까지 2000여명의 비구니를 배출했다.

<찾아가는 길>

교통편 - 경부고속도로 경산IC를 나오자마자 왼쪽 진량 방면 길로 들어선다. 두번째 신호등에서 자인 방면으로 우회전하면 69번 지방도. 갈림길이 나오지만 계속 직진하면 된다. 7㎞쯤 가면 왼쪽에 학교가 보이는 3거리. 여기서 우회전해 919번 지방도를 타고 간다. 다시 200m를 간 다음 동부4거리에서 좌회전하면 '운문' 표지판을 만난다. 계속 달리면 운문호를 거쳐 운문사로 이어진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경부선 열차가 가장 편하다. 동대구역에서 대구 남부시외버스터미널(053-743-4464)까지 20분 거리. 남부터미널에서 오전 7시20분부터 30분~1시간 간격으로 버스가 있다. 청도시외버스터미널(054-372-1565)에서도 오전 7시30분부터 1시간 간격으로 운문사행 버스가 있다.운문사 입장료는 어른 1,300원, 청소년 700원, 어린이 500원. 운문사(054)372-8800,주차료는 2000원

▲경부고속도로 건천 IC → 20번국도, 청도방면 25km → 운문댐삼거리 → 운문사 16km (40분소요)

▲대구 → 경산 → 금천(청도온천) → 운문댐 → 운문사 (1시간소요)

▲밀양 → 유천 → 매전(동장천) → 운문댐 → 운문사 (50분소요)

▲울산 → 언양 →24번국도(밀양방면) → 921지방국도(경주방면) → 운문령 → 운문사 (40분소요)

청도=김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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