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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강소기업에 배운다] 5. '기술 서비스' 영역 개척한 대만 마켓테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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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 마켓테크의 엔지니어들이 공장에 설비를 설치하기 위해 설계도를 검토하고 있다. 마켓테크의 자산은 뛰어난 능력을 갖춘 엔지니어들이다.신동연 기자

대만의 ㈜마켓테크는 대만에서 첨단산업이 성장하는 데 크게 기여한 '숨은 손'이다. 마켓테크가 없었다면 반도체 생산라인과 같은 대규모 첨단 산업용 생산시설 설치 대부분을 외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어려운 생산시설이라도 마켓테크를 거치면 안성맞춤의 생산공장이 된다.

현재 반도체 하청 생산(파운드리) 분야에서 세계 1,2위인 대만 TSMC와 UMC를 비롯해 이 나라에서 잘나가는 반도체.액정화면 등의 정밀산업 생산공장 시설 대부분은 마켓테크의 손을 거쳤다.

그러나 이 회사는 흔히 말하는 자기 제품이 없다. 독자적으로 설비를 생산해 내는 회사가 아니다. 그럼에도 설비.부품 공급의 강자로 자리 잡게 된 비결에는 '설비 설치 노하우'라는 무형자산이 있었다. 이 회사 직원의 3분의 1 정도인 500여명이 생산라인 설계와 설비 설치를 스스로 할 수 있는 엔지니어인 이유이기도 하다.

마켓테크는 1988년 설립됐다. 올해 예상 매출은 약 100억대만달러(약 3367억원)다. 다른 기업들이 고전할 때도 연 20~30%씩 매출이 늘어나고 있다. 직원수는 대만에 750명, 중국 등 해외에 480명 등 1380여명이다. 전 직원의 3분의 1은 해외에서 근무 중이다. 독자제품이 없는 기업인데도 전체 인력 중 3분의 2 이상이 이공계 출신이다.

지난 12일 타이베이(臺北)시 바더로(八德路)에 자리 잡고 있는 마켓테크 본사에서 만난 스콧 린(林) 사장은 "우리 회사는 결코 신기술 발명자가 아니다. 하지만 '기술 서비스 제공업'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시스템통합(SI)업체는 기업의 정보기술(IT) 프로젝트를 대행해 주고, PC와 정보화 설비 일체의 설치를 대행해 준다. 또 일반적인 공장 설비 업체는 설비 수입을 대행해 준다. 하지만 마켓테크처럼 반도체.LCD.발광다이오드(LED).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등 다양한 첨단 분야의 제품을 만들어내는 기업을 위해 설비 일체를 입맛에 맞게 설치해 주는 업체는 세계적으로 매우 드물다. 클린룸 시설.모니터 시스템.검사장비.화학장비.가스 캐비닛 등의 설비를 일괄 대행한다.

마켓테크는 미국.유럽.일본의 선진 부품과 설비 기술을 들여와 원하는 대만.중국.싱가포르의 업체에 연결시켜주기도 한다. 린 사장은 "하는 일은 무역업 같아 보이지만 신기술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어느 회사가 가장 첨단의 설비를 갖추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이 장비를 원하는 업체들의 요구에 맞게 재설계해 설치까지 직접 해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설비가 고장났을 때 빠르고 깔끔한 애프터서비스도 필수다. 게다가 중소기업이 선진 업체와 직접 접촉해 장비를 설치하는 것보다 더 싼값에 이를 해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마켓테크의 노하우의 핵심은 이를 각 기업의 구미에 맞게 새로 디자인해 설치해 주는 능력이다. 이렇다 보니 회사의 가장 큰 재산은 숙련된 기술이 있는 직원과 그간의 경험.기술을 한데 모아놓은 데이터베이스다. 직원들을 수시로 독일.일본.미국 등에 보내 설비 제작업체에서 기술연수를 시키기도 한다.

마켓테크는 마거릿 가오(高) 회장과 스콧 린 사장 등 주요 임원진이 대만의 대표 국립 이공계 연구소인 대만공업기술연구원(ITRI) 출신이다. 직원들 중 상당수는 고객이었던 대기업 TSMC나 노벨.UMC 등에서 일하다가 마켓테크에 합류했다.

마켓테크의 셀리나 비 홍보팀장은 "워낙 다양한 설비와 부품을 고객들의 구미에 맞게 취급하다 보니 상품 카탈로그 자체가 없다"고 말했다.

게다가 몇년 단위로 시장을 주도할 '유행 업종'을 발굴해야 한다. 과거 2~3년간은 LCD 관련 장비가 마켓테크 성장의 효자였다.

대만의 다른 제조업체들은 중국이란 강력한 경쟁상대를 만나 고전하고 있지만 마켓테크엔 중국이 오히려 '기회의 땅'이다. 린 사장은 "반도체.LCD.LED 등을 만들기 위해 설비를 설치하려는 중국 기업들의 문의가 크게 늘고 있다"며 "최근 2~3년간의 성장은 중국시장 덕분"이라고 말했다. 중국기업들이 중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데다 외국 선진업체를 잘 알고, 설비를 구미에 맞게 재설계하는 능력이 있는 마켓테크를 찾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린 사장은 "대만업체들엔 애국심에 호소하는 마케팅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고가 장비 가격의 20%를 깎는 협상을 시도해오는 기업들이 흔하다고 한다. 그는 그래서 "우리의 생존비결은 단 한푼이라도 싸고, 품질 좋은 설비를 업체에 깔아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만에서 생존할 수 있다면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생존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린 사장은 "우리와 비슷한 업체들이 생기는 추세지만 아무도 우리의 노하우는 따라오지 못한다"고 말했다. 특히 애프터서비스 부문의 차이가 크다. 손쉽게 다룰 수 있는 장비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여기에 오기까지 정부의 자금지원은 없었다"며 "순이익의 25%를 세금으로 꼬박꼬박 내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노력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 특별취재팀:글=박방주 전문기자(팀장), 최지영.심재우.장정훈 기자, 사진=신동연.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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