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분수대] 안락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치료 가능성이 없는 환자를 고통 없이 죽게 하는 안락사(安樂死)를 영어로는 'Euthanasia' 라고 한다.

고대 그리스어의 'Euthanatos' 에서 온 것으로 '좋다' 는 뜻인 'eu' 와 '죽음' 을 뜻하는 'thanatos' 를 합친 말이다. 영어의 'mercy killing' 도 같은 뜻인데 '살인' 이란 의미가 강하다. 독일어의 'Sterbehilfe' 는 '죽음에 대한 도움' 이란 뜻으로 좀더 구체적이다.

안락사 논쟁은 뿌리가 깊다. 히포크라테스의 선서에 "환자는 물론 어느 누구에게도 죽음의 약을 주지 않을 것이며 이에 대한 그 어떤 자문에도 응하지 않는다" 는 구절이 있는 걸로 봐서 이미 그리스 시대에도 안락사 논쟁이 있었던 모양이다. 근세에 들어서는 16세기 토머스 모어가 '유토피아' 에서 안락사의 허용을 주장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1998년 11월 미국 CBS방송의 시사 프로그램 '60분' 을 계기로 안락사 논쟁이 다시 불붙었다. 이 방송은 '죽음의 의사' 로 유명한 잭 케보키언 박사가 루 게릭병 말기 환자를 주사로 안락사 시키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줬다.

결국 자신이 찍어 방송사에 넘겨준 이 필름이 결정적 증거가 돼 그간 1백30여명을 안락사 시킨 케보키언은 2급 살인죄로 유죄평결을 받고 현재 수감돼 있다. 그러나 그는 미국의 한 민간단체로부터 '인도주의 시민행동가상' 을 받는 등 엇갈린 평가를 받고 있다.

94년부터 안락사를 비공식적으로 허용해 온 네덜란드가 10일 안락사를 합법화했다. 네덜란드 하원이 지난해 11월 의결한 '안락사법' 을 이날 상원이 최종 승인했다. 미국의 오리건주가 97년 주민투표로 이른바 '존엄사법(存嚴死法)' 을 제정, 안락사를 허용하고 있으나 국가로는 네덜란드가 세계 최초다.

물론 ▶환자가 불치병으로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당하며▶다른 치료방법의 한계에 대해서도 알고 있고▶이성적인 상태에서 안락사를 요구해야 한다는, 일견 까다로운 조건이 붙는다.

그러나 많은 말기환자들이 고통 없는 죽음을 원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이번 결정으로 안락사의 급증은 불 보듯 뻔하다. 다시 한번 안락사 논쟁이 재연될 조짐이다.

아직 안락사 논쟁이 본격화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도 필요성은 많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선 응답자의 76%가 안락사에 찬성했다고 한다. 이제 우리도 안락사 문제를 떳떳하게 공론화할 때가 됐다.

유재식 베를린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