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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태 성폭행 피해자 K씨, "술만 먹으면 성폭행한다고 했다"

중앙일보

입력

부산 여중생 성폭행 살해 피의자 김길태가 검거 4일만에 범행 일부를 자백한 가운데 지난 1월 김에게 성폭행을 당했던 20대 여성이 입을 열었다. 올해 22세인 K씨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김길태가 "술만 먹으면 성폭행한다"고 전했다. 다음은 이 신문이 보도한 내용이다.

K(22)씨는 모자를 눌러써 얼굴을 최대한 가렸다. 초조해 보였다. 목소리는 떨렸고 전화벨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랐다. K씨는 지난 1월, 부산 여중생 살해사건 피의자 김길태(33)에게 납치·성폭행당한 뒤 12시간 가까이 감금됐다가 풀려났다. 부모님은 아직까지 이 사실을 모른다. K씨는 김이 잡혔다는 소식 이후 일절 뉴스를 보지 않고 있다. 끔찍해서다.

K씨는 14일 본지와 단독으로 만난 자리에서 "김이 '나는 술만 먹으면 여자를 성폭행하는 사람이다. 술을 먹으면 나도 나를 모른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K씨는 김이 자신과 관련된 경찰 조사에서 "몇 번 때렸을 뿐 성폭행하지는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는 것에 대해선 "정말 김과 대면하고 싶다. 내 앞에서 김이 어떻게 말하는지 보고 싶다"며 반박했다.

지난 1월 23일 새벽 4시 40분, 일을 마치고 귀가하던 K씨가 집앞 골목에 들어섰다. 입구에는 한 남자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K씨는 별 신경 쓰지 않고 지나쳤다. 뒤쪽에서부터 '다다다다'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검은 주먹이 K씨의 눈을 집중적으로 강타했다. K씨는 몇 초간 정신을 잃었다. 머리채를 잡힌 채 인근 건물 옥상으로 끌려갔다.

K씨는 "김이 3층 계단을 올라가면서 '여자가 그리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입에서는 술 냄새가 났다.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흉기를 들고 있다"는 김의 말에 K씨는 반항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옥상에서 한 차례 성폭행당한 K씨는 채 2분도 걸리지 않는 김의 옥탑방으로 끌려갔다. 입을 막아 소리도 지르지 못했다. 주변에 인적은 없었다.

K씨는 옥탑방에서 두 차례 더 성폭행을 당했다. 낮 12시쯤 김은 K씨에게 "어머니(66)가 올라오니 닥치고 있어라. 입을 열면 죽는다"고 윽박질렀다. 김은 "어머니가 밥 때가 되면 옥탑방으로 밥을 들고 올라온다"고 했다. 방문이 열리고 김의 어머니가 밥을 들고 왔다. 어머니는 접이식 침대 위 이불 속에 벌거벗은 K씨가 웅크리고 있을 줄 꿈에도 몰랐다.

김은 밥을 먹는 대신 K씨를 안고 잠을 청했다. "내보내 달라"는 K씨의 호소에 돌아온 것은 "닥치라"는 김의 짤막한 대답뿐이었다. K씨는 "조그만 움직임에도 김이 깼기 때문에 도망칠 생각은 하지 못했다"고 했다. 오후 3시, 잠을 자고 일어난 김은 웬만큼 술이 깬 것 같았다. 김은 K씨에게 "나는 원래 나쁜 놈"이라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K씨는 기지를 발휘해 "오빠는 나를 죽이지도 않고 참으로 착한 사람"이라고 김을 띄워 줬다.

그러자 김은 K씨에게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구구절절 늘어놓았다. 현재 경찰 프로파일러의 거듭된 회유에도 며칠 동안 입을 닫고 있던 모습과는 극명하게 대비된다. 김은 어린 시절 개구쟁이였던 사진들을 꺼내 K씨에게 보여주며 "나에게도 이런 시절이 있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교회도 다녔지만 술만 먹으면 이렇게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중·고등학교 때는 소위 말하는 '일진'도 했다고 말했다.

K씨는 김이 "'얼마 전 여자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잘 되지 않았다. 날 무시했다'고 말했다"며 "여자 얘기를 많이 늘어놓더라"고 했다. 1시간쯤 김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던 K씨는 다시 한 번 "제발 보내 달라"고 청했다. K씨는 "김은 내가 신고할까 봐 무척 두려워했다"고 전했다.

김은 "내게는 조폭, 경찰 친구들이 있으니 신고하지 말라"고 윽박지르다가 "네가 신고하면 죗값은 받겠지만 그래도 제발 신고하지 말라"고 설득하기도 했다. 결국에는 "미안한데 신고하지 말라. 나 좀 제발 살려 달라"고 매달렸다. K씨는 "절대로 신고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뒤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김은 K씨와 함께 약국에 들어가 상처에 바르라며 연고를 사준 뒤 오후 4시쯤 헤어졌다. K씨는 그날 경찰에 김을 신고했다.

"이후 집에 올 때 항상 택시를 타요. 헛것이 보이고 고양이만 봐도 무서웠어요. 여중생 사건을 보니 나도 죽었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소름이 끼쳐요. (김이) 잡히니까 마음이 좀 놓이는데, 풀려나온다면 더 무서울 것 같아요…."

디지털뉴스 jdn@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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