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중앙시평

‘수퍼 울트라’ 그랜드 바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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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따라서 그랜드 바긴을 통해 북한 핵 문제를 주도적으로 풀어 나가려는 우리 정부의 노력은 높이 평가된다. 북한과 관련국이 모든 협상카드를 한 테이블에 올려놓고 포괄적 타결을 하자는 방식도 좋은 아이디어다. 지난 시절 단계별 접근의 한계를 보았기 때문이다. 최근 통일연구원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84.1%가 그랜드 바긴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북한의 반응은 냉담하다. 지난해 가을 그랜드 바긴 구상이 나오자 마자 북한은 이를 ‘핵 문제 해결에 백해무익한 제안’이라고 일축했다. ‘허황된 꿈’이라고도 했다. 핵 문제는 북한과 미국 간에 논의되어야 할 문제라는 이유에서였다. 입만 열면 ‘우리 민족끼리’를 외치면서 핵은 왜 ‘제국주의 외세’와 해결해야 하는 것인지 답답하다. 신년 공동사설에서 “민족의 화해와 협력을 적극 실현”해야 하고 “북남관계 개선의 길을 열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실제 행동은 오히려 거꾸로인 것이다. 그래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꾸준히 설득해야 한다. 그래서 3·1절 경축사에서 대통령이 그랜드 바긴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해 보자고 다시 한번 제의한 것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랜드 바긴을 실현 가능하면서도 보다 바람직한 구상으로 발전시키려는 노력도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 아무리 훌륭한 정책이라도 성과가 있어야 의미가 있고, 아무리 좋은 제안이라도 상대가 호응해야 거래가 되는 법이기 때문이다. 이대로 시간이 흐르다 보면 북한은 나름대로의 길을 찾아 나설 것이라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마치 대북정책이 우리나라 정책의 전부가 아니듯 북한 역시 ‘남조선’만이 유일한 대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북한은 중국으로의 접근과 협력을 가속화하고 있다.

그래서 우선은 북한을 테이블에 앉히기 위한 전략이 보강되어야 한다. 경제정책에서는 출구전략이 논의되지만, 대북정책에서는 입구전략을 수립할 시점인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미끼가 있어야 고기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기존 원칙의 훼손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원칙을 실현하기 위한 필수적인 수단이다. ‘원칙엔 철저, 접근엔 유연’이라는 이명박 정부 대북정책에도 부합한다.

유인을 더욱 강화하려는 노력도 있어야 한다. 협상카드를 키워야 한다는 뜻이다. 핵 포기의 대가로 체제보장과 경제지원을 제공한다는 정도로는 북한의 관심을 끌기 어렵다. 북한에 핵은 단순한 무기가 아니라 선군이자 주체이고, 무너져 가는 체제를 지탱해 주는 실질적인 조건이다. 핵 포기는 북한에는 생존이 달린 문제인 것이다. 하지만 주변국으로서는 북한체제를 인정하든 안 하든, 지원을 하는 안 하든 별 차이가 없고 큰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북한엔 ‘죽고 사는’ 문제를 ‘줘도 그만, 안 줘도 그만’인 지원과 인정의 문제와 맞바꾸자는 이야기가 쉽게 받아들여질 리 없다.

단순히 오늘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훨씬 더 멀리 한반도 전체의 미래를 고민하는 시각도 필요하다. 테이블에 올려놓아야 할 카드의 종류가 더 다양해야 한다는 말이다. 북한 문제는 핵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핵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도 재래식 무기가 남아 있다. 인권도 외면할 수 없고, 통일을 생각하면 나날이 심각해지는 보건이랑 환경 문제도 방관할 수 없다. 국군포로도 한두 명 데려오고 말 일이 아니다. 언제까지나 상봉행사 정도로 이산가족 문제를 방치해서도 안 된다. 동질성을 회복하기 위한 사회문화 교류도 중요하다. 차제에 진정한 ‘포괄적인 일괄타결’을 추진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랜드 바긴은 이 모든 것을 포함하는 방안으로 발전되어야 한다. 현재 제안의 폭과 범위를 크게 넘어서는 ‘수퍼 울트라’ 그랜드 바긴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성공 가능성이 커진다.

정부는 우리가 당사자로서 북핵 문제의 해결에 적극 노력해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한층 더 큰 빅딜, ‘수퍼 울트라’ 그랜드 바긴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조동호 이화여대 교수·북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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