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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라캉 탄생 100돌 맞아 조명 활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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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이 정신과의사야말로 정신과의사가 필요한 것처럼 보입니다. "

독일의 실존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가 이처럼 '악담' 을 한 대상은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라캉이다. 하이데거는 라캉으로부터 대표작인 『에크리』(ecrit)를 선물받고 친구에게 이같이 말했다. 라캉은 끊임없이 하이데거에게 구애의 손길을 보냈으나 하이데거는 끝내 그를 외면했다.

세계철학사에 남은 이같은 기연(奇緣)의 주인공인 라캉(1901~81)이 13일 탄생 1백주년을 맞는다. 이미 문예계간지 '세계의 문학' 은 봄호(통권 99호)에서 이를 기념한 특집을 마련하는 등 '라캉 다시 보기' 에 불을 지폈다. 난해함 탓에 '막상 사두기는 하지만 끝까지 읽지 않는 책' 이라는 글 모음집 『에크리』가 곧 번역돼 나오는 등 저서.관련서 출판도 활발하다. 라캉 연구가 본격화할 '봄' 을 만난 것이다.

거의 20세기 전체를 살면서 정신분석학을 이론과 실천 양면에서 혁신시킨 라캉은 현대철학과 문화예술이론, 여성이론, 심리학 등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다. 더불어 정신분석학계로부터 이중으로 파문을 당하는 등 타협을 모르는 이론혁명의 기수이기도 했다.

그는 '프로이트로 돌아가라' 고 외치며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를 복원하는 '제2의 정신분석 혁명' 을 역설했다. 이 때문에 프로이트를 단순한 현실 적응 기술(치료심리학)로 변질시키려는 자칭 '프로이트의 적자(嫡子)' 들에게는 이단아로 지목됐다. 그는 정신분석학의 치료 목적은 순응이나 적응이 아닌 자기의 욕망을 포기시키지 않는 것(이를 진정한 윤리적 주체라 했다)이며 그 욕망을 포기한 상태가 정신병이라 했다.

이같은 라캉의 '주체와 욕망 이론' 은 루이 알튀세르와 자크 데리다, 질 들뢰즈, 줄리아 크리스테바 등 후대의 많은 철학자들과 크리스티앙 메츠 등 영화이론가들에게 중요한 영감을 제공했다. 미셸 푸코의 『성(性)의 역사』도 결국은 프로이트와 라캉을 극복하려는 노력의 산물이었다.

진작 서양 학계의 열광에 비해 한국의 라캉연구는 최근에야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94년에야 처음으로 그에 관한 책(『욕망이론』)이 나왔으며, 이제야 사상의 원전 격인 『에크리』(66년작)의 번역을 마주하게 됐다. 경희대 권택영(영문학) 교수는 라캉이론을 통한 영화분석에 높은 관심을 보여왔다.

서울대 철학과의 김상환 교수는 "라캉의 철학은 프랑스의 모든 철학자들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할만큼 지대했다" 며 "한국은 이제야 그의 철학에 대한 정통적인 분석의 대상에 들어가는 초기단계에 있다" 고 평가했다. 그동안 국내에서 라캉은 의대 중심의 자연과학계와 문학비평쪽에서 주로 환영받아왔다.

<연보>

▶1901년 프랑스 파리 출생

▶32년 박사학위 논문 「망상증적 정신병과 개성과의 관계」 발표

▶38년 파리정신분석학회(SPP) 정회원 됨

▶53년 SPP 탈퇴 후 프랑스정신분석학회(SFP)에 합류. 이후 30년간 지속되는 세미나 시작

▶63년 국제정신분석학회(IPA)가 SFP의 가입조건으로 라캉을 교육분석가 명단에서 제외시키자 SFP 탈퇴

▶64년 파리프로이트학회(EFP) 창설

▶66년 대표작 『에크리』 출간

▶68년 5월 학생운동 지지. 제자들이 파리8대학(뱅센)에 정신분석학과 설립

▶81년 사망

<관련저작들>

▶욕망이론(문예출판사, 94년)

▶라캉과 정신분석 혁명(민음사, 96년)

▶자크 라캉 1.2(새물결, 2000년)

▶에크리(새물결, 근간)

▶라캉 임상이론 입문(민음사, 근간)

▶라캉이론으로 영화읽기 (민음사, 근간)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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