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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도심 직장인 산책코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7면

"1시간 동안 부서 야유회를 하는 셈이죠. "

지난 29일 낮 12시 20분. 서울 덕수궁 안은 '넥타이 부대' 로 넘쳐났다. 담벼락을 따라 설치된 벤치마다 삼삼오오 짝을 이룬 회사원들이 도시락을 먹고 있다.

정문에서 5백여m 들어간 광명문(光明門) 주변 곳곳에는 아예 돗자리를 깔고 앉아 식사를 하고 있다. 햄버거나 김밥부터 집에서 가져온 도시락까지 준비한 음식도 다양하다.

이 시간 '근대명품전' 이 열리고 있는 석조전 옆 덕수궁 미술관은 식사를 마치고 미술 감상을 즐기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게다가 낮 12~1시에는 무료 입장이어서 부담도 없다.

간간이 꽃샘 추위가 닥쳐오긴 하지만 봄기운이 완연해지면서 직장인들이 색다른 점심식사를 하고 산책을 즐기기 위해 고궁이나 공원 등 야외를 찾아 나서고 있다.

덕수궁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회사가 있다는 김성주(31)씨는 "친구와 점심 약속을 하면서 일부러 장소를 이 곳으로 정했다. 상쾌한 바람과 봄볕 덕에 소풍 기분이 난다" 고 말했다.

덕수궁 이원준 관리과장은 "겨울철에는 점심 시간에 덕수궁을 찾는 회사원이 하루 30명 정도에 불과했는데 날씨가 풀리면서 하루 7백여명으로 늘어났다" 며 4월 중순 벚꽃이 피면 1천5백명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증권가 1번지' 인 여의도에도 비슷한 풍경이 벌어진다. 낮 12시가 되면 '여의도 공원' 부근 은행과 증권사, 방송사 등에서 도시락을 든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나온다. 6만9천평의 부지에 산책로와 자전거 도로, 잔디밭 등이 아기자기하게 들어서 있어 짬을 내 여유를 찾는 데 안성맞춤이다.

유건(30.회계사)씨는 "여의도 빌딩 숲에 있다가 공원에 들어오면 숨통이 탁 트인다. 식사 후에 자전거를 타고 10분만 돌면 스트레스가 모두 사라진다" 고 말했다.

강남에선 삼성동의 선릉이 인기다. 테헤란로에서 5분 거리라 벤처 기업에 다니는 회사원들이 많이 찾는다.

입장료는 4백원. 점심시간에 찾아오는 회사원만 하루 4백여명에 달한다.

역삼동에서 근무하는 김효정(43.회사원)씨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팀 모임을 갖는 기분" 이라며 "야외에선 회사일 보다 개인적인 얘기를 많이 나누기 때문에 부원들끼리 더 친해질 수 있다" 고 설명했다. 이밖에 중구 필동의 남산골 한옥마을도 주변 회사원들이 자주 찾는 단골 산책코스. 입장료는 없으며 정문을 지나 천우각 앞 광장에서 간단한 식사를 한 다음 20~30분 산책을 즐기기에 알맞다.

일본인 관광객 미야모토 마리코(宮本麻利子.19)는 "회사원들이 갑갑한 공간을 벗어나 벤치에서 여유있게 도시락을 먹고 있는 모습이 흥미롭다" 고 소감을 말했다.

한편 기상청에 따르면 서울에서 개나리는 31일부터 피기 시작해 4월 5일 절정에 달한다. 또 진달래는 4월 3일, 벚꽃은 4월 12일부터 피기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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